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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Nov 04. 2020

Ep.1 니하오? 니하오!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2018년 03월 12일 아침 8시.


아직 겨울의 매서움이 채 지나가기 전, 나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양손에는 커다란 캐리어 1개와 각종 화장품과 생필품을 가득 담은 백팩 하나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지정받은 내 좌석을 찾았다. 난생처음 해외로 떠나는 여정인데 그 순간만큼은 지쳐서인지 출국의 기쁨을 잠시 잊은 듯했다. 널찍한 우등석에 앉아 한숨 돌린 나는 그제야 두 다리를 쭉 펴고 전날 이루지 못한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버스에선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도착을 알리는 안내음이 흘러나왔고, 나는 뻑뻑해진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켰다.


난생처음 와 본 인천 국제공항. 대학을 제주에서 다닌 탓에 국내선은 꽤 많이 타봤지만,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실감이 났다.


'나 정말 이 세상 밖으로 떠나는 거야?'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당당히 공항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터라 어리둥절하던 내 모습이 안내원에게 꽤 안타까워 보였는지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그때 시각이 오후 12시 30분. 탑승까지 1시간 정도 남아 면세점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이 얼마 없었기에 정말 구경만 했다.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한식집에서 냉면 한 그릇 시켜먹는 게 고작이었다. 집에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또 먼 길을 떠나야 했기에 빈 속으로 나왔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렸는지 몹시 배가 고팠다. 아주 싹싹 긁어먹은 기억이 난다.


인천을 떠나 중국 어느 도시 상공에서

냉면 한 그릇에 12,000원인 것을 계산할 때 알았다. 3초간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흔쾌히 카드를 긁으리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니 곧 내가 탑승할 중국 청두成都행 탑승이 임박했다. 난 아주 여유롭게 그리고 무엇보다 첫 출국임을 티 내지 않고,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한 손은 에스컬레이터에 한 손은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온갖 분위기는 다잡으며 걸어갔다.


드디어 탑승 완료. 비록 비즈니스석은 아니었지만, 마음가짐만큼은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가는 대기업 C.E.O였다.


비행시간은 총 4시간.


중국이 대륙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4시간 비행이 처음이었던 나에겐 그것도 곤욕이었다. 아무래도 마음가짐만 퍼스트 클래스였던 탓인 듯하다.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다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게 새로웠던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버텼던 것 같다. 지금 다시 가라고 한다면 난 돈을 좀 더 모아서 분명 비즈니스석이라도 탈 것이다.


해질녘 즈음 나는 드디어 청두成都에 도착했다. '청두'라는 도시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서부에 있는 도시로, 교통의 요지이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 촉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지난 2008년 쓰촨 대지진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곳으로 인식되어 나에겐 소규모 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가보니 인구수 1,500만의 중국 내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도시였다.


아무튼,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 8대 요리 중 하나로 꼽히는 사천요리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그중에서도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훠궈(火锅)와 마파두부(麻婆豆腐)를 꼭 맛보기 위함이었다.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정말 갑자기 너무나도 중국어가 배우고 싶었다. 그것도 정형화된 스타일의 인터넷 강의 혹은 오프라인 강의가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니하오'가 전부였는데.


이곳은 내가 4개월 동안 묵었던 학교이다. 어찌 됐던 나의 신분은 교환학생이니까.


나는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정말 좋은 기회에, 정말 좋은 곳으로 그리고 이렇게 예쁜 학교에서 놀고 먹고 공부할 수 있었고, 지브리의 색감을 묻혀 놓은 듯한 건물들 사이를 눈만 뜨면 거닐 수 있었으니까.


도착한 순간부터 감탄의 감탄의 감탄을 퍼부었던 촌놈 그 자체였던 나. 그렇게 나의 중국 입성 첫날이 흘러갔고,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홀로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외쳤다.


"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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