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잘 안다는 착각
엄마들이 말합니다. '내 자식은 내가 잘 알죠. 내 속으로 낳은 놈인데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뻔해요.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처럼 속이 훤히 보이죠.'
그런데 아이들의 말은 조금 다릅니다. '엄마는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해요. 내 마음을 전혀 몰라요. 제발 간섭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짜증 나 죽겠어요.'
저 역시 제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자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맞나?' 예전에 알고 있던 그 아이는 온 데 간데없고 낯선 아이가 등장했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다' -노자-
아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아이, 내 방식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를 야단치기 바빴습니다. 물론 사춘기의 신체적·정신적 변화와 호르몬 작용 때문도 있었지만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사춘기는 저마다 타고난 성향이 민낯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딸과의 사춘기 전쟁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뒤에야 'MBTI'와 '에니어그램'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두 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의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해 달라는 자와 결코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자의 평행선이었습니다. 에니어그램에 의하면 딸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4번 유형이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민하며, 규정이나 속박을 싫어하고 평범한 것을 못 견뎌하는 성향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2번 유형이어서 오지랖 넓게 도와주려고 하고 남의눈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규칙을 어기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향이었습니다. 남편은 6번 유형으로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에 안전 지향적인 사람이고, 아들은 저와 같은 2번 유형이었으니, 가족 내에서 딸은 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속박당한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나 좀 제발 그냥 냅~두라고~'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물론 성격검사나 유형검사 결과가 다 맞을 순 없고, 사람의 성향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규정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같은 유형끼리도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가 이런 검사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할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은 항상 같이 있어 잘 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항상 곁에 있기에 더 이상 탐구 대상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익숙함이 자칫 소홀함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남편, 아내, 부모님, 아이들, 친구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들의 근원적 두려움은 무엇이지, 꿈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행복은 멀리 있는 사람들과 페이스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서 오지 않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얼굴을 맞대어 눈빛으로 '좋아요'를 교환할 때 오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