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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Aug 05. 2021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2021-08-04

그녀의 하루는 아침 일곱 시에 시작된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 커피를 마신다. 한 시간 남짓 집안일을 한 다음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편지 쓰기에 착수한다. "남편은 책상에다 타자기를 둬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니까 상석을 드려야죠." 빈센트는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미소를 짓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너그러움과 의혹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이십 분 정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다음에 다른 일을 하죠. 그게 몸에 좋은 것 같아요."
빈센트가 점심을 준비하고, 그녀는 두 시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다. 늘 일을 한다. 어디에서 지내든 그렇다. 영화나 연극은 많이 보지 않고, 외출하는 일도 드물며, 손님 접대는 거의 없다. 그녀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자서전의 두 번째 권과 인도에 대한 소설도 써야 한다. 미래의 일이 어찌 될지 누가 알겠나? 또 다른 유명한 의사인 어느 소설 속 인물이 썼듯이, "끝까지 살아가는 건 유치한 일이 아니다."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 의 글이다. p.91.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어떻게든 일상을 이어나간다. 재택근무하는 날이 많아져서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은 때도 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로 또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아직 뜨겁고 혹독한 여름이다. 이별을 했고, 수수와 보리가 번갈아 아프고, 조카가 태어났고, 올림픽을 본다. 생각을 - 주로 부정적인 - 하지 않기 위해 멍하니 티비를 보고, 집안일을 최대한 미뤄뒀다 하고, 푹 잠들지 못하면서도 계속 누워 있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일상의 새로운 루틴을 찾게도 되었다. 요즘은 매일 오전 11시면 네이버 나우에서 윤상이 진행하는 <너에게 음악>을 켠다. 알람 설정을 해두고 라디오 듣는 기분으로 한 시간 동안 음악도 이야기도 슬렁슬렁 보고 듣는다. 수요일 저녁에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목요일 저녁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챙겨본다. 지난주부터 등록해서 토요일 아침에는 실내 테니스장에 가고, 어제는 오랜만에 저녁 먹고 한강에 나가 걷다가 조금 달리기도 했다. 오늘은 <고양이와 할아버지> 7권을 포함해 책 몇 권도 주문해두었다. 다시 조금씩 읽고 쓰고 보고 듣고 그러려고 한다. 한없이 게으르고, 때때로 다 싫지만, 뭐 어쩌겠는가. 딱히 보잘것없는 삶이지마는 이런저런 루틴을 끌어모아 이어가야지. 끝까지 살아가는 건 유치한 일이 아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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