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릴 적, 그러니까 20년 남짓한 시간을 거슬러 보면 그 시절 풍경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때는 어딜 가든 정자가 있었다. 그곳엔 이름 모를 할머니들께서 꼭 앉아 쉬고 계셨는데,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놀고 땀이 나면
할머니들과 함께 앉아 쉬곤 했다. 그때 쉬었던 숨이 서른이 넘은 내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람 이름 하나 외우는 것도 버거운 내게
어린 나의 작은 숨이 기억된다는 건 사실 놀라운 일에 가깝다.
적지도 많지도 않게 먹은 나이에 내가 걸어온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을 회상해 본다.
그리운 인연, 떠나간 인연, 새로운 인연들이 내 머릿속에 하나의 유기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엔 내 머릿속에 ‘나’라는 사람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여러 인연들이 나를 스쳐가고 우연이 인연으로 됨으로 나라는 사람은 많은 변화와 성장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던 것 같다.
세대를 보아도 그러하다. 우리는 막을 수 없는 사회의 요동으로 인해 각 세대들이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한국은 특히나 여러 아픔과 고난을 정면으로 맞고 다 함께 일어선 나라이다.
나는 감사히도 또래보다 일찍 직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되니 나라는 사람이 꼿꼿해짐을 느꼈다.
가진 게 없어 연약했던 초년생의 모습은 잊힌 지 오래였고, 현재에 안주함이 편안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편안함은 어릴 적 내가 할머니들과 함께 숨을 쉬었던 정자에서의 숨보다 버거웠다.
어떨 땐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성 역류성 식도염이라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쉬는 날 카페에 앉아 그때의 숨을 생각하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들은 열심히 노는 우리를 보면서 웃으셨다.
우리는 그분들이 주신 맛있는 떡을 나눠 먹고 같이 웃었다.
못해도 60년의 나이차이는 날터인데 소담을 나눴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 내가 귀여워 또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 웃음에 땀도 식고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길을 걷다가도 정자를 자주 볼 수 없다.
있더라도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도 많이 없다.
앉아 있더라도 모두 귀에 무언갈 꽂고 있거나 손안에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있었다.
설사 나와 같이 옛 정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다 할지라도 서로 경계심을 풀 수 없는,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사실 우린 다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다짐했었다. 어딜 가든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더불어 살겠노라라고.
나라는 존재만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부터 사람은 서로 뭉쳐 공동체를 이뤘고
하나가 되었던 이유는 그저 우린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되뇌고 되뇐다.
살다 보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 죽이고 싶은 원수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인간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곤 한다.
그렇게 매일 나 외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픔으로 본다.
홀로 있을 때 아픔은 어둠이 된다.
어둠을 아픔으로 보게 되면 손해 보더라도 밝은 빛을 주고 싶어진다.
세상이 사람을 홀로 두려 할 때, 나는 같이 할 것이라 외친다.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까? 사랑을 섬기는 내가 당신이 되고 그리고 또 당신 옆에 있는 누군가가 사랑이 된다면
이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