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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Oct 02. 2018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는 법


나는 종종 똑같은 옷을 자주 입는다는 소릴 듣는다. 좋아하는 코트를 일주일 내내 입는다든지 아끼는 로퍼를 한 달 가까이 신기도 했으니 내가 봐도 좀 너무 하긴 했다. 니트나 팬츠를 너무 자주 입어 본래의 매력을 잃었다 싶으면 미리 사둔 같은 제품의 옷을 또 입었다. 구두와 같은 경우는 자주 신을수록 손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제품은 두 켤레를 사서 번갈아가며 신기도 했다. 심지어 추운 겨울에도 어떻게든 좋아하는 코트를 입기 위해 히트텍에다 얇은 니트, 터틀넥 스웨터까지 겹겹이 입었고,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도 발목이 다 드러나는 로퍼를 고집했다. 놀랍게도 이런 고집스럽고 멍청한 버릇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나 대단한 신념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내 하루하루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차림새를 고수했다. 애플이라는 독보적인 기업의 수장인 그의 패션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미리 정해진 옷을 마치 유니폼처럼 입음으로써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 정도로 잡스가 지닌 애플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대단했으며 오직 그것 말고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옷을 수백 벌 구입해 입었던 그의 행동이 오직 애플의 혁신에만 매진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즐겨 입었던 디자인의 터틀넥이 품절되어 구할 수 없게 되자 직접 매장에 전화해 자신이 입었던 제품과 똑같은 옷을 생산해줄 것을 요청한다. 자신이 입었던 터틀넥의 색과 촉감, 그리고 소매를 올렸을 때의 느낌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그처럼 대단한 집착을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매일 입고 싶어 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옷 한 벌을 입더라도 내가 지닌 기질과 체형에 가장 적합한 것을 입고 싶고, 그것을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입고 싶은 것이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매장에 있는 수십 벌의 옷을 입어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를 통해 내가 원하는 감각을 지닌 옷을 찾는다면 그 수고로운 시간조차 내게는 큰 기쁨이 된다. 마치 처음부터 내 몸의 일부인 듯 어떤 빈틈도 없이 몸에 스며드는 옷은 내게 어떤 동질감을 선사한다. 그 제품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도 기존의 제품이 지닌 동질감을 찾기란 어렵다. 만일 그런 만족감을 주던 제품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내 분신을 잃은 듯한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아마 잡스가 같은 옷을 수백 벌씩이나 샀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성질을 지닌 옷들을 하루 종일 입는 것은 내 하루를 온통 나다운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정서적 교감인 셈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취향을 특정한 옷을 입으며 충족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똑같을 옷을 싫증 하나 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옷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옷은 지극히 단적인 예시일 뿐이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주는 무엇에 대해 고민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옷, 음악, 공간, 관계 등 나는 일상에서 내가 누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가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내게 가장 적합한 것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럴수록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무심하고 건조한 일상을 부드럽고 말랑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 오고 가는 감정과 생각들 속에서 내가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다른 누군가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온전히 존재하게끔 하는 무언가를 찾아 그것으로 내 하루를 채우는 것은 내가 나의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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