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나
1남 2녀 중 2녀가 결혼을 하여 출가를 했다. 그리고 막내아들인 나마저 서울로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미리부터 적적할 것을 걱정했다. 나는 적적해할 부모님을 핑계로 평소 너무나도 키우고 싶던 푸들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다. 어디서 봤는데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반려동물로 인해 많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노년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정서에 매우 좋다고 했다. 강아지를 입양해야 할 이유는 많았다.
여기서 잠깐, 반려동물은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 같은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받는 이가 거절한다면 강아지는 파양의 절차를 밟을 것이다. 생명을 키우는 것에는 엄청난 희생과 포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때의 나는 여기까진 생각 못했다. 분명 좋아하실 거라는 믿음 말곤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당시 직장과 가까운 '애견샵'이라 써져있는 곳에 가서 가장 활발한 수컷 갈색 토이푸들을 한 마리 입양했다. 그리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그 소중한 생명체를 작은 상자에 넣어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온 울타리와 배변패드, 물통과 사료통을 적당한 자리에 세팅을 하고 부모님을 기다렸다. 부모님이 오시자마자 이제 막 3개월이 된 작은 푸들을 들이밀었다. 당황하시지만 일단 품에 안고 보신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고 눈 맞춤을 하신다. 한참 예뻐한 후에야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다.
엄마 아빠 적적할까봐 데려왔다고 했다. 얘는 털도 안 날리고 엄청 똑똑해서 똥오줌도 잘 가릴 거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아버지는 예뻐하는 눈빛을 잠시 추스르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죽으면 거시기하니까 이제 안 키울라고 마음 먹었는디
나는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시기에 웃으며 이렇게 받아쳤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아빠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몰라...
그러니 아빠는 그럼 OK라신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직접 강아지의 이름을 지으셨다. 수컷 푸들 아가는 '갑돌이'가 되었다. 갑돌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배변 훈련도 금방 되었고 산책도 자주 시키며 잘 돌봐주고 있었다. 예방 접종은 물론이고 중성화 수술도 적기에 마쳤다.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 춘리를 제 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던 상처가 있어서일까. 피부나 귀가 조금만 이상하다 생각되면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토 색깔만 이상해도 호들갑이었다. 곧 강아지 보험도 들었다.(나중엔 적금으로 바꾸려 해지했다) 이제 아버지도 절대 목줄 없이 산책을 하지 않는다.
운동량이 없어 비만이었던 어머니는 갑돌이 산책 덕에 좀 더 움직이게 되었다. 부모님을 지키려는 사명감 때문에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예민해서 짖음이 좀 있었지만 그냥 그냥 참고 사신다. 지금의 갑돌이는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 온 강아지 중엔 가장 호강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늘 반복되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가 사람 먹는 음식을 자꾸 갑돌이에게 준다는 것이다. 피부 때문에 병원에 가면 수의사 선생님은 늘 사람 먹는 음식 주지 말라고 하신다. 살이 많이 쪘으니 체중 감량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식사할 때마다 매달리거나 간절한 눈빛으로 주위를 맴도는 갑돌이에게 아버지는 고기도, 생선도, 야채도, 과일도 모두 입에 넣어주신다. 그러니 식사 때마다 갑돌이는 같이 먹자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주지 말라고 해도 몰래 자꾸 준다. 개도 행복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갑돌이는 사료랑 강아지용 간식만 먹고사는 게 더 행복한 것이라고 말해줘도 이해를 못하신다. 이 문제는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 단골 소재다.
게다가 갑돌이 어렸을 때부터 건강하라며 준 고구마나 삶은 달걀을 너무 많이 주신다. 투박하게 시골 개처럼 키우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적정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료도 많이 먹고 간식도 많이 먹고, 사람 먹는 음식까지 먹으며 사는 갑돌이는 곧 미용비 5만원을 돌파했다. 강아지의 체중으로 미용비를 받는 단골 미용실은 성견이 되어서도 3만 5천원을 받았었는데, 점점 살이 쪄 이제는 기술이 들어가지 않고 전체를 밀어버리는 일반 미용도 5만원을 받는다. 5-6킬로가 적당한데 8-9킬로가 된 것이다.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 몰래 고기를 주다가 걸린다.
어머니는 쉬는 날마다 갑돌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바쁘다. 귀나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오고, 또 약용 샴푸로 자주 꼼꼼히 씻기기를 반복한다. 이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푸들의 최대 취약점인 슬개골 탈구가 의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갑돌이가 살짝 뒷다리를 전다고 전화를 받았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수술비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한다. 게다가 수술 후 재발률이 매우 높다. 이게 다 너무 뚱뚱해져서 그렇다.
나는 부모님께 신신당부했다. 당장 모든 간식을 끊고 사료도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라고. 산책은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고 미끄러운 집 바닥에서 뛰지 않도록 공놀이와 인형놀이를 중단하라고. 식탁에 뒷다리로만 서서 매달리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뒤돌아서면 까먹는 부모님이기에 두세 번씩 세뇌시키듯 말했다. 부모님도 심각성을 알았는지 그대로 실행하셨다. 갑돌이는 다행히 며칠 후부턴 전처럼 건강히 걷고 뛰었다. 살도 조금 빠졌다. 푸들의 고질병인 슬개골 탈구는 유전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생활 습관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려견에겐 맛있는 음식 많이 먹는 것도 행복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는 사람이 아님을 늘 기억하고, 줘야 할 것과 주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또한 급여량도 잘 지켜줘야 한다. 푸들은 갈비뼈가 살짝 보여야 건강한 체형이라고 한다. 그만큼 살찌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려면 꼭 지켜야 한다.
난 가끔 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꼭 말한다.
갑돌이 사람 먹는 거 주지 말고 사료랑 지 간식만 먹게 해야 돼요. 꼭.
안 그러면 큰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