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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강진역 Oct 14. 2024

5월, 진보 정권 들어서면 집값이 오른다고? 이상하다

부동산 커뮤니티에 가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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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권은 교체됐다. 수진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 처음으로 진보 정권 시대를 살게 됐다.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한 수진은 틈만 나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강남 워킹맘'이나 '서초 엄마들의 모임'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확인하고, 또 새로 올라온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원래 살던 동네가 아니니, 온라인 커뮤니티는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중요한 창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정치 소재는 논쟁이 잦아지자 아예 금지됐다. 수진은 아쉽긴 했지만 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정답 없는 논쟁으로 데이터를 낭비하지 않고, 격을 지키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수진은 본인도 격이 높은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런 사람들이어서 안정적인 삶을 오래 유지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진보 정권 들어서면 보통 집값이 오른다는데, 이번에도 그럴까요?'라는 글이었다. '경제 흐름도 정권교체와 맞물려 있구나...' 수진은 민주화와 정의만 들여다보던 자신의 무지함을 느끼며 글을 클릭했다. 왜 그런지도 궁금해졌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나...? 그럼 대부분의 부자들이 뽑는 보수 정권이 되었을 때 집값이 오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왜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른다고 하는 거지...?'



수진의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부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할 때는 집값이 안정되고, 저소득층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니.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는 남편 한결의 생각만 믿고 있던 수진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으니 당연했다. 이제라도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커뮤니티의 서초 토박이 엄마들의 고민을 보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년 전 입주한 아크로리버파크 취소분이 있었는데 줍지 못해 한이 된다는 글, 부모님 집이 곧 재건축될 것 같은데 더 오르기 전에 명의를 바꾸어 놓아야 할지 등등 다른 세계의 고민을 하는 글들에 수진은 여러 생각을 했다. 아들이 컸을 때 본인은 어떤 부모가 되어 있을지 상상해보곤 했다. 아들이 상속세나 증여세 고민을 할 성인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종부세 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살고 있을지 말이다. 수진은 아들이 전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길 바랐다.


 

안정적인 삶을 대물림해주고 싶은 엄마 수진은 그렇게 부동산에 관심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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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는 데 한계를 느끼고 부동산 커뮤니티에 가입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느 댓글에서 본 '붇옹산'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의 가입자수가 가장 많았다.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10만 명 넘게 가입한 커뮤니티니 정보도 많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신규 가입자도 많아져 주인장의 공지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회원수가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됩니다. 처음 커뮤니티를 열었던 2006년부터 작년까지 부동산 불황기 속에서는 몇 만 명 수준이었는데 벌써 20만 명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활한 정보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도배글, 광고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이 부동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라... 수진은 부동산에 처음 관심을 둔 '부린이' 수준이지만, 수요가 늘겠다는 예측은 할 수 있었다. 수요-공급 법칙에서 수요가 늘면 가격이 상승한다는 기본 법칙도 연결이 됐다. 부동산이 오를 것이 보이는데, 평생 전세 세입자로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출근해 일을 하면서도 집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선배들과 커피를 마시면 기승전 부동산 이야기로 흘렀다.



"선배님은 작년에 어떻게 집을 사기로 하신 거예요?"

"우리 집주인이 갑자기 급전이 필요했나 보더라고. 1억이 급했대. 그래서 급매로 팔 테니 계약금 1억을 다음 날 줄 수 있는지 하더라고."

"와 그럼 얼마나 싸게 사신 거예요?"

"그때 시세가 7억대였는데, 6억 3천에 팔겠다고 하더라고."

"와 서초현대를요?"

"급했던 거지, 그리고 그땐 대통령이 집 사라고 해도 아무도 집 안 사는 분위기였잖아."

"근데 안 무서우셨어요?"

"그때 뭐가 씌었나 봐. 원래 남편도 하락론자라서 집 살 생각이 없었거든? 근데 그날따라 남편도 친한 형을 만나고 오는데, 집을 살지 고민을 하는 거야."

"형부가요?"

"응, 신기하지. 절대 무리하는 거 싫어하는 스타일이잖아. 근데 애도 점점 크고, 초등학교도 입학했고, 자꾸 이사 다니는  것도 지치니 고민되기 시작한 거 같아."

"선배님은 그때 온 우주가 도우셨나 봐요. 저는 1월에 신동아 놓쳤잖아요. 몇 달 만에 3억 넘게 올랐던데."

"조금 소름 돋는 게, 작년 초에 점을 봤는데 문서운이 들어온다고 했었거든. 어떻게 우리 마음이 탁 매수 쪽으로 맞춰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

"오 그 점집 어디예요?"



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서초 아파트를 매수한 선배의 이야기에 수진은 부러움이 올라오는 감정을 부정할 수 없었다. 같은 경기도 출신인 선배가, 이제 서초구 자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만 다른 레벨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생각까지 들었다. 집이 뭐길래.




3



아이를 재우고 나면 늘 들어가던 '맘 커뮤니티' 대신 '부동산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용어들이 낯설어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읽어야 했다. '임장'이라는 단어부터 찾아봤다. 은어인 줄 알았는데 일본어에서 온 정식 용어라는 것도 누군가의 댓글로 알게 됐다. 새로운 단어들에 점차 익숙해지니 이제는 분분한 의견들에 혼란스러웠다.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니 처음에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헷갈렸다. 전문가인 양 자기 말이 맞다고 싸우는 이들도 많았다. 누군가 자기가 소유한 동네를 낮게 평가하면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가며 가치를 높이려 애쓰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며칠 밤에 걸쳐 틈틈이 인기글들을 정독하고 나니 조금은 땅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건물을 사는 게 아니라, 땅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금 가치는 떨어져도 땅의 가치는 상승하기에 부동산을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도 알아갔다. 지난 몇 년간은 경기불황으로 부동산 하락기가 있었지만, 10년 주기에 따라 이제는 오를 타이밍이 올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수진은 주말마다 외출을 하기만 하면 아파트만 쳐다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빠, 저기 아리팍 작년에 입주했는데 분양할 때 평당 4천만 원이라고 미쳤다고 그랬거든? 25평이 9억대였어. 근데 지금 벌써 15억이래. 완전 로또 입주한 거지."

"아리팍이 뭔데?"

"아크로리버파크. 오성물산 출신 한기형 조합장이 아리팍 덕분에 스타 됐잖아."

"뭔 아파트 이름이 저렇게 길어? 여기 아파트 이름들 다 외우는 것도 신기하다."



"아리뷰는 내년에 입주하잖아, 거기 위치도 진짜 좋은 거 같지 않아?"

"아까 입주했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건 아리팍이고, 아리뷰는 아크로리버뷰야."

"줄여서 말하지 말고 풀네임으로 말해 ㅎㅎ"

"아, 쏘리쏘리. 하도 붇 커뮤니티에서 줄여서 말하는 것만 보다 보니..."

"너는 어딜 가든 부동산 생각뿐이구나."



남편 한결에게 지나가며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의 가격을 브리핑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반포자이도 대단지여서 25평이 12억까지 올라오고 있대."

"10억이 이렇게 흔했나?"

"잠원동아는 아직 9억이야."

"의외네. 저건 아직 10억을 안 넘었네?"

"그렇지!! 그렇지!! 뉴코아 바로 앞이잖아. 근데 연식이 애매해서 아직 10억이 안 넘었대. 저평가 같지 않아?"

"이제 나도 10억에 익숙해졌나 보다. 집값이 미쳐가네."



하락론자인 한결의 마음도 점점 돌아서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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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진보 정권에서 왜 집값이 오를까?'였다. 이에 대한 정답을 찾아야 남편의 마음이 확신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많은 글들을 찾아봐도 개인적인 견해일 뿐 정확한 근거가 보이지 않았다. 그 논리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새로운 정권의 청와대 정책실장의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6년 전에 출간한 <부동산은 끝>이라는 책이었다. 진보 정권은 무주택자는 계속 무주택자로 살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 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유주택자와 무주택 계층은 투표 성향에 차이가 난다. 자가 소유자는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인다.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재개발돼 아파트로 바뀌면 한때 야당의 아성이었던 곳들이 보수 여당의 표밭이 된다."

                    




수진은 그제야 '유레카!'를 속으로 외쳤다. 유주택자가 되면 보수 성향이 되어 진보 지지자가 줄어드니, 집권 연장을 위해 주택 소유를 못하게 하는 것이 진보 정권 정책의 방향성이었다. 이내 수진은 여러 글에서 읽은 주장들의 논리를 퍼즐 맞추듯 맞추어 갔다. 중산층이 집을 사기 힘들 정도로 아예 격차를 벌리기 위해 집값 상승을 유도한다는 것, 그래서 세수를 늘리는 동시에 지지층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판을 짠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시각으로 새로운 정권의 정책들을 보니 방향성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공급은 충분하니, 수요를 막겠다."



취임 직후부터 부동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정권이었다. 과연 집값 상승을 억제시킬 수 있을까? 수진은 이 정권의 5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논리적으로는 진보 정권이 시작되었기에 집값이 오를 것 같다. 하지만 정권이 집값을 잡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두는 양, 강수를 두는 모양새였다.



과연 이 정권 5년 동안 집값은 어떻게 될까? 취임 직후 5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의외의 인물이 국토부장관에 지명되는 기사를 확인했다. 정치를 전공하고 홍보와 예산을 주로 담당해 온 국회의원이 이번 정권 초대 국토부장관에 지명됐다. 전문성은 부족하고 정권의 의지를 잘 실천할 인물이라는 평가도 보였다.  



첫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기까지 수진은 매일 뉴스와 커뮤니티 글들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집, 사야 해? 말아야 해?

산다면 뭘 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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