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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Oct 11. 2019

25 한 단계 더 내려가는 생의 곡선

지난밤엔 악몽을 꾸었다. 꿈속이 아니라 현실이지만 잊고 싶어 악몽이라 해둔다.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엄마 침대가 바뀌었다. 보통침대에서 혼자 일어나기 어려워해서 침대 옆에 잡고 일어나는 봉을 설치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봉을 잡고도 혼자 못 일어난다. 특히 밤중에 자다 일어날 때는 더 못 일어나서 어깨나 목을 받치고 엄마를 일으키다보면 팔 근육, 회전근, 허리까지 힘이 들어간다. 이러다가 회전근이 파열되거나 허리 다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은근히 되었다. 그래서 보장용구 업체와 상의하니 환자용 침대를 들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수술을 여러 번하며 병원생활을 겪어본 경험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면적도 좁고 양쪽 난간이 꼭 사람을 가두어 놓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런데 환자용 침대는 상체를 자동으로 일으키는 기능이 있으니 누웠다 일어나는 수고를 덜 수 있겠다 싶어 신청을 했다.      



엄마 침대가 새로 들어오니 기존의 침대는 내 차지가 되어 바닥 생활을 면하게 되었다. 봉의 위치를 바꾸어 설치하고 이동용 화장실의자도 침대 가까이 놓았다. 이제 밤에 일어나 화장실 가는 수고를 덜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옛날 어릴 때는 요강을 머리맡에 두고 자며 자다가 일어나 온 식구가 요강에서 볼일을 보았는데 그런 기억도 났다. 그에 비하면 이동용 화장실은 수세식처럼 물을 받아두어 냄새도 거의 안 나고 뚜껑을 덮으면 외관이 우아한 의자로 변한다. 이제 침대와 화장실을 편리하게 바꿨으니 엄마도 나도 고생을 좀 덜겠지 생각했다.     


침대가 들어오던 날 엄마는 뭔가 모르게 상태가 안 좋았다. 새 침대에 대한 호기심도 없고 좋다 나쁘다 감정 표현도 없다.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는데 아무리 받혀드려도 일어나지를 못한다. 침대스위치를 조절하여 상체를 올려드렸으나 조금도 몸을 일으킬 노력을 않고 옆으로 비스듬히 미끄러진다. 몇 번을 애써서 겨우 일어나 앉히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은근히 화도 났다. 그러나 참고 자세히 관찰하니 몸을 비집고 일어나는 쪽이 왼쪽이라 다쳐서 뼈가 제대로 안 붙은 왼팔이 힘이 없어 버티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고 짐작이 되었다. 다음날 엄마가 오기전에 침대의 방향을 바꿨다. 오른쪽으로 눕고 일어날 수 있게. 아들과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침대 두개를 들어 옮기고 기둥을 옮겨 설치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엄마가 돌아오자 나는 엄마를 일으켰다 앉혔다 자세를 바꾸게 하고 이쪽저쪽 누우라고 침대가 편한지 시험을 했다. 엄마는 한두 번 하더니 싫은지 그대로 누워버린다. 저녁간식을 드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시려는지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얼른 가서 침대를 일으켜 세우고 봉을 잡고 서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엄마는 봉을 잡고 봉춤자세로 서서 꼼짝을 않는다. 보행기로 손을 옮겨야 걸을 수 있는데 봉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아무리 설득을 하고 거의 안다시피 하고 안심을 시켜드려도 봉을 잡은 손은 더 단단해진다. 억지로 손아귀를 벌리려고 했으나 어찌나 단단히 잡고 있는지 꼼짝을 않는다. 급기야는 손등을 찰싹찰싹 때려도 말을 안 듣는다. 나도 지쳐서 맘대로 하라고 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엄마는 서서 실례를 하고 나는 화가 나서 광분했으며 엄마는 자괴감인지 슬픔인지 모를 소리를 흐흐흐 냈다. 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눙칠 때 내는 비굴한 웃음소리다. 그 뒤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은 뒤처리와 다시 눕히려 씨름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새벽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일어나 씻고 아침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꼼짝 않고 누워있다. 막내에게 할머니를 깨우고 씻겨서 식탁으로 모셔 오도록 했다. 서로 한마디 말도 안했다. 엄마는 얌전히 약을 드시고 밥, 빵, 과일까지 잘 드신다. 나의 양심을 건드려 사과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피해자처럼 말없이 식사를 하신다. 내가졌다. 나는 사과했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은 몸짓으로 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은 조금씩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뭔가 전조를 느끼는 생물들처럼 정해진 미래가 다가오는 느낌에 내 몸의 세포들도 조금씩 곤두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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