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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Oct 23. 2019

겨울이 다 가면 또 못 입을텐데

계절이 바뀌면 한바탕 옷정리를 한다. 여름내 옷걸이 가득 걸어 놓았던 옷들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찬 바람이 분 지 한참 지났는데 여름옷을 치우지 못해 옷방이 난장판이다. 가을옷,심지어 초겨울 옷까지 장롱이나 옷 보따리 여기저기서 한가지씩 끄집어 내서 입고 있다. 지난주 드디어 여름옷을 한보따리 해서 장롱 한구석으로 떠나보냈다. 드디어 날개를 편 긴 옷들이 옷걸이를 차지했다. 잘 입지 않는 정장핏 자켓들도 밖으로 냈다. 공식적인 행사나 강의를 할 때 한 번씩 입는다.

그런데 장롱 한 구석에 계절이 바뀌어도 밖으로 못나오는 옷이 두어 가지 있다. 언젠가부터 몸이 불기 시작하면서 불편해 안 입는 옷들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계절 맞춰 꺼냈다가 결국 안입고 다시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안 꺼낸다. 괜히 입지도 않고 세탁 수고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사를 한 번씩 할 때마다 조금씩 옷을 버리기 시작했다. 몇년씩 들락거린 옷들은 순차적으로 헌옷수거함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옷중에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정장이 한 벌 있다. 몇번을 들락거렸는데 짱짱한 천이 아쉬워 못버리고 계속 보관해왔다. 수험생으로 가장 살이 쪄서 입사한 지 얼마 안되서 마련한 최초의 고가 정장이었다. 신입사원으로 받은 월급을 과감히 투자하여 롯데백화점의 고급정장코너에서 손을 떨며 산 정장이라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할 때만 입고 고이 걸어두곤 했었다. 정장 입을 자리에서는 늘 단벌 신사로 입던 옷이다.살이 찌면서 장롱 한구석으로 들어갔지만 매번 주머니에 소독약을 잘 싸서 넣어 좀벌레가 먹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살이 조금 빠졌길래 오랫만에 장롱에서 꺼내 한 번 입어봤다. 상의는 어찌어찌 입겠는데 아무래도 치마 허리가 잠기지 않는다. 그 당시도 수험생활로 찐 살이 안 빠진 상태에서 제법 뚱뚱한 몸으로 샀던 옷인데도 그렇다.


다이어트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빠진다는 뱃살이 문제다. 우스게 말로 상체가 피골이 상접해야 비로소 빠진다는 그 아랫배 피하지방 말이다. 옷이 폼이 날려면 배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언제나 멋지게 옷 입어볼까 한숨을 쉬게 된다. 급기야는 이 정장을 꺼내 옷걸이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에 걸어두었다.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어야 결심이 단단해진다는 충고를 명심하고 가끔씩 입어보곤 한다.

겨울이 다 가면 또 못 입을텐데, 못 입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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