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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May 08. 2024

대박난 만남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흰색의 자가용들이 속속 도착하고 경광등을 번쩍이는 경찰 차량까지 등장했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집들에서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나오신다. 자가용에서는 평소에 보기 드문 젊은이들이 내린다. 시나브로 좋은 일이 벌어질 기운이 작은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마을의 가장 큰 잔치인 초등학교 총동창회 날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세워진 학교는 사십 년의 세월을 이 작은 동네와 함께한 후 폐교가 되었다. 이제는 된장 공장이 되어버린 초등학교 교정의 쓸쓸함처럼 새로운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이 거의 끊어진 노인 마을이 되었다. 형제 자매, 심지어는 부모 자식이 동문이고, 같은 성씨의 집성촌이다보니 해마다 열리는 동문 운동회는 가족 잔치요 동네 효도 잔치가 된다. 어버이날을 앞둔 5월의 첫 주말, 된장 공장이 된 학교터 근처에 새롭게 지어진 마을회관 마당은 어린 시절 운동회날처럼 만국기가 휘날리고 오색풍선이 띄워졌다.


운동회를 주관하는 기수로 지정된 올해의 동기회는 전날부터 모여 잔치준비에 바쁘다. 올해는 1976년도 졸업생들이 주관을 하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사는 동문을 위해 대형버스가 운행된다지만 동창회를 핑계로 미리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사촌오빠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기 위해서다. 무성하게 자라는 풀 속에 외롭게 누워있는 아버지 무덤을 찾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목적이다. 불효자식이라 할 만하게 일 년에 겨우 한 번 무덤을 찾는다. 정성껏 벌초를 하시는 사촌오빠도 이제는 칠순이 넘었으니 이 또한 도리가 아님을 알지만 이렇게 찾아 뵙고 얇은 봉투 쥐어 주는 부끄러움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래서 엄마가 늘 말하셨나보다. “고향은 마음에만 품고 자주 못 오니까 고향이라고.” 어린 시절 객지에 나와 있을 땐 엄마 보고 싶어서 밤을 낮을 삼아 달려왔었는데.


당일이 되니 서울과 부산에서 출발한 대형버스가 도착하며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되었다. 넓은 회관 앞 운동장엔 기수별로 차양막이 세워지고 본부석은 대형스피커가 자리 잡으며 벌써 신나는 트롯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주관기수들은 단체로 티셔츠를 맞춰 입고 앞치마까지 두른 모습으로 선 후배의 자리에 각종 음식을 나르기 바쁘다. 차양텐트 안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반가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고성의 사투리는 확성기 없이도 고막을 마구 두드려 댄다. 평소 같으면 소음에 눈살을 찌푸릴테지만 오늘만은 흥분의 도파민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는 자극이 된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는 시기는 대개 오십 대를 넘어서다. 젊은 시절부터 친하던 몇몇 친구들이 모임을 유지하다가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에서 한고비를 넘어서게 되는 때에 제대로 동창회 조직이 활성화된다. 은퇴하기 십여 년 전에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너 혹시 경숙이 맞나?” 상대의 사투리에 직감적으로 고향 친구인가보다 했지만, 누군지 도저히 짐작이 안 되었다. 통성명을 하고 어린 시절 살던 집 위치를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누군지 알았다. 동창회에 나오란 말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나 정작 모임에 나간 것은 그로부터도 이삼 년이 지나서였다.


늙어가며 필요한 것은 옛 친구란 말에 모임에 나가긴 했지만 사십여 년을 만나지 않던 친구들이라니 마음이 바짝 긴장되었다. 음식점에 들어선 순간 당황했다.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친구들은 조심스레 존댓말을 쓰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박장대소를 한다. “야, 동창끼리 존대가 뭐냐? 말 놔라.” 한 친구의 호통에 얼떨결에 “응, 응”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후부터 이름 알아맞히기 통과의례가 시작되었다. 이럴 줄 알고 모임 전날에 노랗게 빛바랜 작은 졸업사진 한 장을 보며 얼굴을 익혔는데 지금의 모습은 짐작도 못했다. 친구들은 스무고개처럼 살던 집 위치와 형제자매,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저마다 내놓으며 나를 응원했다. 한 명씩 이름을 댈 때마다 친구들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동창회 입회가 통과되었다. 그 후 뒤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나도 똑같은 스무고개를 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일년에 한 번씩 겨우 만나는 관계이니 서먹할 수도 있지만 작은 집성촌의 특성상 형제 자매와 이모, 고모가 서로 얽혀서 동네 소식을 늘 듣고 살기 때문에 만나면 단박에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대도시의 대형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이 있다. 나이 들어 만나는 친구는 편안하지 못하면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옛말에 자주 못 보는 형제자매보다 곁에 사는 이웃사촌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살아보니 꼭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횟수나 이해득실보다는 눈빛 한 번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가장 최상이다. 어렸을 적 친구들은 순수하던 시절의 시간을 공유한 관계여서 다시 얻기 어려운 만남이다. 그 옛 시간들을 서로 소중하게 지켜 나가면 돈과 명예,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노년에 정말 좋은 친구가 된다.

 

노래자랑이 신명나게 펼쳐지고 노래 제목처럼 ‘천년지기’가 될 마음으로 함께 목청을 돋우었다. 행사의 꽃인 경품추첨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여유 있게 사는 동창들의 찬조로 무대 앞에 수북이 쌓여있던 경품은 행운을 얻은 사람의 환호하는 소리를 따라 속속 주인을 찾아갔다. 마지막 1등 상으로 자전거 한 대만 놓여있는 잔치마당, “1등상은 226번!” 외치는 사회자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저요 저요!” 두 팔을 번쩍 들고 달려 나갔다. 축하 리본이 휘날리는 자전거를 끌고 동기생들 앞으로 오니 모두 펄쩍펄쩍 뛰며 환호해 준다. 올해 동창회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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