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경숙 Sep 08. 2019

소꿉놀이 같은 다이어트 식단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처음엔 식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적게 먹게 되면 늘 배고프고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라 괴로울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실패하고 요요현상을 경험했다는 간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식단표를 받고 '내가 잘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잘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로만 구성된 식단, 좋아하는 건 다 못 먹는 품목이었다. 밀크커피, 라면, 빵, 떡, 아이스크림,비빔냉면, 튀김, 떡볶기, 김밥, 잡채... 음식이름이 끝도 없이 생각났다.

그런데 다이어트 시작 3개월째 접어든 지금은 식단을 잘 지키고 별로 공복감도 없고, 식탐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에서 식사준비를 해도 아무런 갈등없이 식구들 식탁을 준비해주고 나는 따로 정해진 내 몫의 다이어트 식탁을 차린다. 결심을 단단히 한 덕도 있지만 두 달동안 내게 맞는 식사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음식도 그다지 가려먹는 편이 아니다. 다만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음식, 쌀밥을 유난히 좋아했다. 처음에는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풀 때 현기증이 나는 듯 했다. 밥냄새에 취해서. 그래서 당장 농협매장으로 달려가 각종 잡곡을 샀다. 콩,조,보리,현미를 한껏 넣고 밥을 해서 식구들에게 줬다. 나는 잡곡밥을 원래 안 좋아해서 식탐이 생기지 않아 좋고 식구들은 덕분에 좋아하는 잡곡밥을 먹어서 좋고 일석이조였다.

마트 갔을 때 라면을 아예 사지 않았다. 그리고 육개장같은 찌게음식은 1인분 포장을 사서 엄마만 데워드렸다. 돈까스도 딱 한 쪽만 튀겨서 막내를 준다. 일단 음식을 입에 대면 많이 먹는 식습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칼로리 높은 음식은 나를 위해 절대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외식은 끊었다. 회사에서 먹는 점심 한 끼는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이때는 밥의 양을 무조건 절반으로 줄여 먹는다.

단백질은 닭가슴살 가공품 100g을 먹는데 맛이 좋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닭가슴살을 쌈을 싸서 먹는다. 가장 즐기는 것은 닭가슴살 양배추쌈이다. 내가 워낙 양배추쌈을 좋아하는데 밥 대신 닭가슴살을 된장 살짝 발라 양배추에 싸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상추, 생깻잎, 쌈채소도 좋다.

탄수화물은 현미밥, 고구마, 바나나, 사과를 교대로 먹는다. 다 맛있고 즐겨먹는 음식이라 무리가 없다. 양은 150g정도 먹는다. 고구마는 중간크기 1개, 바나나 작은 것 2개, 사과는 중간크기 1개, 현미밥은 1/3공기와 반찬 약간, 국물은 안 먹는다. 다 먹고 냉수 한 컵 마시면 된다. 출근 시간이 늦었을 때는 닭 가슴살 한봉지와 바나나 또는 고구마를 먹기좋게 잘라 통에 담아 운전 중간 중간 먹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간식이다. 아침에 출근하며 당근 하나, 오이 하나, 파프리카 하나를 먹기 좋게 잘라 락엔락에 담아 회사로 가지고 간다. 때로 사과, 복숭아, 자두, 자몽 같은 과일도 맛으로 반쪽 정도 곁들인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점심 식사전에 몇개를 먹는다. 포만감에 점심밥을 조금 먹게 되는 효과가 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로 남은 야채를 집에 가기전에 먹는다. 그러면 집에 가서 저녁을 허겁지겁 먹지 않아도 된다. 늘 배가 부른 상태가 유지된다. 집에 도착해서 저녁은 아침과 같이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먹는다.

뭐 비결이랄 건 없지만 석달정도 아무 괴로움없이 먹고 있는 나의 식단이다. 가끔 회식을 하거나 별미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햄버거를 먹기도 한다. 그럴 때는 하루 칼로리 총량에 맞춰 조정을 한다. 하루 1,200kcal 이하를 기준점으로 해서 다른 음식 섭취량을 조절 한다. 예를 들면 오후에 브라보콘 하나를 먹었다면 220kcal를 섭취했으니 그날 저녁 고구마는 안 먹는다. 그 대신 토마토나 당근을 하나 더 먹으면 된다. 배도 부르고 열량도 맞추고.

이렇게 말하면 '뭔 낙으로 사냐?' 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다이어트 소꼽놀이에 빠지면 그게 은근 먹는 것보다 재미있다. 작은 접시에 삶은 고구마 토막을 썰어 분홍 저울에 달고 하나씩 집어 먹으면 꼭 어린시절 친구들과 소꼽놀이 하는 기분이 든다. 어른들 흉내를 내서 '여보 식사하세요!' 하며 분홍 프라스틱 접시에 나뭇잎과 모래, 나무열매를 곁들여 주던 꼬마의 밥상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다만 한 가지 함정이 있다면 음주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부득이 술자리를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절제하지만 맥주나 소주가 한 두잔 들어가면 판단이 약간 흐려져서 아무 의식없이 안주를 먹게 된다. 술도 칼로리가 장난이 아닌데 안주까지 고칼로리이니 잦은 술자리는 다이어트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가급적 술자리를 줄이다보면 대인관계에 소극적이 된다. 한창 활동이 왕성한 사람이 다이어트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는 이제 사회적 관계망를 조금씩 줄여도 되는 나이다. 오래 친한 사람들, 나와 생각의 교류가 가능한 사람들과의 최소한의 만남만 유지하며 산다면 음주는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꼰대나이의 우리와 술자리를 그닥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 회식은 거의 점심식사로 진행된다. 가끔 옛날 동료들과 거하게 마시기도 하지만 그런날은 술병이 나서 한 이틀 제대로 못 먹으니 저절로 상쇄가 된다. 그마저도 일년에 서너번이니 견딜만하다.

절제하고 단순하게 사는 노년의 행복을 준비하는데 다이어트 소꿉놀이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몸무게가 줄어들고 체형이 달라지는 게 가장 기쁘기도 하지만 삶의 태도 변화도 덤으로 얻는 다이어트의 즐거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정이 행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