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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pr 23. 2021

<주택살이 꿈나무> 내가 만드는 나의 공간

땅도 구매했겠다, 땅 모양에 맞춰 집 모양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는 예전부터 사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어릴 적 내가 지내던 공간이 좁고, 어두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좀 더 밝고,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나만의 공간을 항상 꿈꿔왔었다.


결혼 전부터 오늘의 집이나 집 꾸미기, 핀터레스트 같은 어플을 수시로 들여다봤었고

이제는 공간을 보는 눈이 제법 업그레이드됐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이진 못할지언정, 봤던 것을 적용할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생각한 것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

캐드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스케치업도 포토샵도. 기능적인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기술이

나에겐 없었다.

그렇다고 어플을 쓰자기엔, 너무 제한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파워포인트였다.


미완성의 PPT 도면



파워포인트에서 도형을 그려서 도면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실제 거리인 m를 cm로 환산하고 도형을 그렸다.

큰 도형으로 집 전체 모양을 잡은 뒤에, 작은 도형들을 방으로 만들어 넣는 식이었다.


사이즈 가늠은 살던 아파트 도면에 비교하면 대충 감이 잡혔다.

이전에 쓰던 안방이 3m x 3m였으면, 그걸 기준으로 방 사이즈를 조정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그려서 설계사무소에 가져다주면, 설계사무소에서는 가능한 만큼 실제 도면으로 구현해주고, 불가능한 부분에 대한 이유를 덧붙여 도면을 돌려주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그 도면을 들고 가서 여기저기 방들을 넣어보고 빼보고 하며 고민했다.

우리도 생업이 있고 저녁엔 육아를 해야 하니 그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근 두 달은 넘게 이 작업만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작업이 길어졌던 또 다른 이유는 예산 때문이었다.

우리가 신축 아파트 분양 당시 받았던 대출 정도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환금액의 최대치였다.

그래서 그만큼만 대출을 받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건축비용이 조금 빠듯했다.


그만큼 건물 크기 자체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했다.

큰 건물에는 다양한 공간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공간을 나누다 보니 그만큼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만,

정작 설계사무소는 이 일에만 매진해 있을 수 없었기에 우리가 어떻게든 쥐어짜 내야 했던 것이다.   


  

 많은 돈으로 잘 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은 돈으로 잘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어떤 건축가의 말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고 공간을 구성하는데 많은 투자를 했다.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들의 대안책을 찾아 완성된 도면이 나왔다.


완성된 도면



 사실 지금 이 구성이 백 퍼센트 우리의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땅 모양도 여의치 않았고, 건물 내부 벽 두께와 다른 여러 요소들 때문에 포기한 것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동선과 예산을 최적화 한 우리만의 개성을 살린 공간이 됐다.


1.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기에 수납 기능을 많이 제거하는 게 오히려 더 나았고

   (수납공간이 많아지면 내가 모르는 잡동사니가 늘어나기 때문),

2. 거실에서 아이들과 공부를 포함한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싶었기에 서재가 따로 없어도 괜찮았다.

3. 안방은 오로지 잠만 자는 공간이길 바랐기 때문에 침대 사이즈에 맞게 구성을 했다.

4. 외출 후 돌아왔을 때 옷을 세탁실에 넣고 샤워를 하고 환복 하는 동선들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도록 구성했다.

5. 옷방과 세탁실이 가까워야 빨래를 관리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가까이에 위치하도록 만들었고,

6. 집안의 모든 옷들이 한 곳에 있어야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옷방은 넉넉한 면적으로 하나만 두었다.     


순전히 동선과 살림의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었고

살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생각해낸 구성이다.   

  

아파트 내부 구성에 꽤 오랜 시간 몸을 담았던 아빠는 이 도면을 보고는 흠칫했다.

이렇게 지으면 절대 다시 못 판다면서.     


그 말은 설득력있는 말이었지만, 와 닿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니 상관없었다.

나에게 편한대로 맞춰 짓고, 거기서 행복하기 위한 것이니 남들 다 하다는 보편적인 구성은 생각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아빠를 대충 알아서 잘하겠다며 입을 막고는 대로 인허가를 진행했다.

이제 지적측량만 마치면 첫 삽을 뜰 수 있다.


시공사와의 트러블 때문에 10년씩 더 늙었다는 말들에 약간 두렵긴 하지

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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