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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Dec 18. 2023

친구 없는 친구라서 창피하다

이름을 불러주는 우정처럼


  어릴 적부터 나는 사람을 무척 따랐다. 낯을 가리지 않고 배실배실 웃고 다니는 게 나의 강점이었다. 넉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말을 거는 게 좋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동네 초등학교를 다녀요. 어디 가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엄마는 일찍이 우리 집을 떠났고 아빠는 일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다.


  베스트 프렌드. 우정 포에버. 사물함과 책상을 긁으며 새겼던 우리들의 이름. 학교 쉬는 시간에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며 매일 함께 점심을 먹던 사이. 부지런히 교환 일기와 편지를 나누고 우정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던 시절. 나는 가끔 그 시간을 떠올리며 옛 친구에게 닿지 않을 안부를 건넨다.




  친구 없는 학교생활은 지겹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나와 어울려 주지 않았다. 따돌리는 이유를 물어도 말해주지 않아서 그냥 왕따, 찐따로 살았다. 열일곱 살의 나는 자퇴 아니면 죽음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도저도 못한 채 이 년 동안 죽은 듯이 지냈고 마지막 일 년은 새 학교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삼 학년 때 학교를 옮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전학 간 날, 난생처음 보는 얼굴들이 몰려와 나에게 어느 학교에서 왔고, 어디에 사는지 따위를 물었다. 나는 철창 속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도 호기심으로 시작되었을 과거의 따돌림이 재현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다행인 건지 당연한 건지 헷갈렸다. 오히려 그들은 서먹한 나를 챙기고 잘 웃어 보였다. 주변에서 '정아야' 하고 부를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오랫동안 지워졌던 그 이름이 내가 맞는지 생경했다. 무사한 일상이 어색했지만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눈길이 가는 반 친구가 있었다. 나는 말 한마디 안 섞어본 그 아이가 이유 없이 좋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별말 없이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우리가 언제쯤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그냥 먹으러 가자고 말하면 될 텐데 그게 참 난감했다.


  더는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왕따 꼬리표를 버리지 못했다. 나는 보다시피 친구가 어렵다. 사람을 깊게 사귀지 못해 친구도 별로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호감을 느끼고 표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부담을 줄까 봐 무심하게 군 적도, 앞뒤 재지 않고 들이댄 적도 있다.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데 한참 서툴고 때로는 힘이 든다. 내가 친구 없는 친구라는 게 창피하다.


  그럼에도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그들은 놀랍게도 나의 과거와 우울증을 헤아린다. 내가 말 한마디 못하더라도, 나를 한참 만날 수 없어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 그들을 친구라고 용기 내어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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