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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Dec 11. 2023

어쩌면 꿈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악몽에서 벗어난 꿈처럼


  나는 항상 꿈을 꾸는 아이였다. 꿈속이라면 아파트 옥상이든 절벽이든 가리지 않고 떨어졌다. 내가 스스로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어떤 힘에 떠밀려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게 키가 크는 꿈이라고 했지만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반에서 가장 작았다. 그 정도로 자주 떨어졌으면 170cm는 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도 걸핏하면 꿈을 꾼다. 루시드 드림이나 예지몽은 꾸지 못했고 가위도 눌리지 않았다. 대신에 누군가로부터 매번 쫓기거나 숨어야 했다. 나를 죽도록 증오하는 존재에게 발각되면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꿈에서 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개 두는 위치를 바꾸거나 침대 앞 거울을 치워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생각이 많아서 그럴 수 있어. 그래, 너무 부정적이었지. 나는 침대에 누워 기분 좋은 순간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카페 창가 자리에 운 좋게 앉은 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꽃을 선물하는 것, 연인과 맞잡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전날 밤의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잔혹한 꿈을 꾼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강렬했던 이미지만 기억에 남았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창가 자리로 돌진한다든가 꽃은 입을 활짝 벌린 괴물이 되고 연인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식이었다.


  늘 그래왔듯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어차피 잡힐 텐데 뭐하러. 그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치열하게 꿈을 살았다. 그때만큼은 삶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꿈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꿈결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꿈 많은 아이였다. 피아노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이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 게 좋아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일 년 동안 우리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긴 CD 선물이 소중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지만 셀 수 없을 만큼 꿈이 많았다. 내가 만난 몇몇 어른들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현실은 모든 걸 의심하고 강요하는 세계였다. “그건 좀 힘들 텐데.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야.”라든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을 도와줘. 항상 성실하고 다정해야 해.” 하는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착한 사람이 좋은 어른도 된다는데. 어린 나는 남들이 말하는 세상의 수많은 규칙들이 부담되었다. 나의 모난 구석만 눈에 들어왔고 그런 자신을 미워했다.


  이제는 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은 사실 없다는 걸. 대신에 내가 자라면서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건 이런 것이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 꿈을 재단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믿는 것. 설령 좌절하더라도 또 다른 꿈을 계속해서 꾸는 것.


  어린 시절 나에게 꿈을 나눠준 사람들은 가짜가 아니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실을 배웠다. 그 기억으로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누군가도 같은 꿈을 꾸기를 바라며.


  꿈은 허상을 좇는 헛된 마음인 동시에 희망을 실현하는 마음일 것이다. 둘 중 무엇을 따르든 꿈은 믿는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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