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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Dec 04. 2023

그것이 풀빵이라는 게 나는 슬프다

팥 없는 국화빵처럼


  첫눈이 가고 곧 대설(大雪)이 온다. 밤을 굽고 옥수수를 찌는 냄새가 골목을 메운다. 천막 안에선 짭조름한 계란빵과 달달한 붕어빵을 굽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걸 찾아 나섰다. 그들은 하얀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저마다 길을 떠났다.


  나의 겨울 간식은 뭐니 뭐니 해도 풀빵이다. 동그란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약간의 팥을 넣은 국화빵 말이다. 요즘은 좀처럼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전통시장에서 몇몇 상인들이 이리저리 굴리며 부지런히 익히고 있지만.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내가 가서 부지런히 사 먹는다. 내가 이토록 국화빵에 매달리는 이유는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와 적당한 팥소의 조화 때문도 있지만 풀빵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아빠를 보러 오이도행 전철을 탔다. 나와 따로 지내던 아빠는 소래포구 근처에 살고 있었다. 십이월의 얼음장 바람이 섬으로 갈수록 거세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 해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아빠와 만나는 것을 후회했다. 매서운 이 계절을 탓한 건지 아니면 멀리 사는 아빠를 귀찮아한 건지.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평소 무뚜뚝하던 모습과 다르게 어딘가 들떠 보였다. 이럴 게 아니라 함께 새우구이를 먹자며 시장 어딘가에 잘하는 집이 있다고 했다. 설마 이 날씨에 그 집을 찾으려고 돌아다닐까 아찔해서 나는 다급해졌다.

"시장이 좀 넓어야지. 가게 이름이나 주소 알아?"

"모린다. 가 보면 안다."


  우리는 상호명도 호수도 모르는 '시장 어딘가'로 향했다. 아직 시장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포구 근처는 물이 넘쳐 온 바닥이 질퍽였고 사방에서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차피 새우 파는 집은 주변에 넘쳐나는데 하필이면 이곳이다. 나는 “굳이 거기에서 먹어야 해? 냄새나서 싫어” 대들고 싶었지만(사춘기 시절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해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든 걸 참아내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길눈이 밝은 아빠 덕분에 개미굴처럼 복잡한 길목 몇 개를 돌아 소문의 새우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손가락만 한 크기의 대하가 꽤나 비쌌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빙빙 눈치를 보며 쭈뼛대고 있었는데 아빠는 어느새 의자를 끌어 앉으며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안 오고 뭐 하노!"

"아, 알았어."

"배 터지게 먹구 아끼지 말구."

"근데 괜찮아?"

"아빠 아직 안 죽었다잉."


  아빠와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몰라서 나는 괜히 두리번거렸다. 소금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앉은자리마다 새우를 익히느라 가게 안은 훈기로 가득했다. 벌겋게 익은 새우가 좀처럼 식지 않아서 입천장이 데는데도 아빠를 따라 열심히 먹었다. 아빠 말대로 세상에서 제일 맛난 새우구이였다.


  가게 밖을 나서니 세찬 바람이 바로 얼굴을 덮쳤다. 발 빠른 아빠는 웬 노상 점포 앞에서 상인과 무어라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저 뒤에 서 있는 내게 큰 소리로 물었다.

"붕어빵은 없다카는데 풀빵 물래?"

"풀빵? 국화빵?"


  나는 그때 처음으로 풀빵을 먹어봤다. 아마 대여섯 개 정도였나. 설탕을 뿌린, 팥 없는 국화빵을. 입가에 채 녹지 않은 설탕을 혀로 훑으며 아빠한테 하나도 주지 않고 먹어 치웠다.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이, 그 맛이 좋았다. 아주아주 나중에 내가 국화빵을 다시 먹어보기 전까지 모든 풀빵엔 팥이 없고 설탕을 뿌려주는 줄 알았다.


  당신을 낯설어하는 나를 위해서 마치 어린아이에게 울지 마라, 과자를 쥐어주는 것처럼 아빠는 내게 국화빵을 사 주었다. 어린 딸을 달래던 그 마음이, 그것이 풀빵이라는 것이 나는 슬프다.


  아빠의 투박하고 거친 손등을 오랫동안 창피해했다. 검지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오른손을. 하지만 내게 건네던 손길이, 조심스러운 마음이 두고두고 떠오를 때면 아빠가 아닌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진다.


  그날 배 터지게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보였다. 내가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구나. 만약에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아빠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아빠, 다음에 또 풀빵 사줘! 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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