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남은 돌처럼
D+100.
멋대로 약을 끊은 지 세 달이 넘어갈 무렵, 나는 산송장과 다름없었다. 하루 종일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를 바랐다. 밥 먹거나 화장실 갈 때 말고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우울하다는 핑계로 무책임하게 모든 걸 놔 버린 걸까. 나는 사실 우울증이 낫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머리가 무거웠다.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창문도 닫았다. 방 전체가 오랫동안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씻는 것조차 너무너무 힘에 부쳐서 엉엉 우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무서웠다. 몸과 마음이 나를 두고 떠난 것 같았다. 시간을 잊으려고 내리 잠만 잤다.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고. 나는 외진 길 한구석에 남은 돌처럼 느껴졌다.
내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던 것은 병원에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를 두고 선생님이 걱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이 담긴 한 통의 메시지에 마음이 크게 동요했다. 그래, 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었지. 다신 오지 않을 기회일지 몰라.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햇빛을 맞았다. 가슴이 너무 벅차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창밖으로 나뭇잎이 흔들흔들 바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믿어보기로 했다.
백일 만의 외출이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긴장이 되어 손바닥에 땀이 났다. 선생님에게 그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진료실에서 자주 한숨을 쉬었고 조금은 울었다. 억지로 말을 고르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을 만큼만 했다.
지난 일 년간 꾸준히 약을 먹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는데 삼 개월 단약으로 이렇게 바닥을 치다니. 나는 열 번의 시도 중에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이다. 그간의 노력이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건 당연히 쓸모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구멍 난 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버려진 돌에 마음을 담기도 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돌을 쌓고 쌓고 또 쌓았다. 세찬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어 공들인 돌탑이 한순간에 쓰러지면 무너진 자리부터 다시 쌓아 올렸다. 조심스레 돌을 집어 올리던 그때의 절실함은 저마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녹슬지 않는 조개껍데기처럼.
나는 이제야 돌의 마음을 헤아린다. 내가 하나둘 쌓아온 과정들이 아예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완벽한 돌탑을 완성하기보다 순간순간에 간절한 마음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얼마나 자주 넘어지든 결국은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마저 하던 대로 마무리 짓는 법도.
컨디션 회복을 위해 앞으로 삼 개월 이상은 재활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 저용량부터 약을 시작했다. 하루는 밀린 고지서를 정리하고 하루는 책 한 권을 내내 읽었다. 나는 조금씩 침대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차차 일상을 회복하는 와중에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자살 충동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을 때마다 카운트를 셌다. 게임에서 여러 개의 생명 하트를 주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났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어야 했다. 죽음보다 삶에 가까운 삶이 차곡차곡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