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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Jan 01. 2024

나쁜 생각을 하는 이상한 계절이다

주저앉는 겨울처럼


  몇 년 전부터 겨울만 되면 나는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별 탈 없는 일상에 조만간 최악의 일이 벌어질 것 같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싶었다. 이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얀 눈에 계속 파묻었다.


  우울이 파고든 겨울은 삶의 의지를 무너뜨렸다. 눈덩이가 불어나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것처럼. 살갗을 에는 추위와 길고 긴 밤 사이에 언제 깨질지 모르는 빙판 위를 걷는 내가 있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나를 두고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라고 믿어주었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히기를 원한다.


  아무런 걱정도 우울도 없는 그런 겨울이 있었다. 난데없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반갑고 딸기와 귤을 양껏 먹으며 두꺼운 이불에 몸을 돌돌 말고 있으면 단잠이 솔솔 오는 때가. 입김이 허옇게 퍼져나가는 것도 즐거웠던 그 계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겨울을 참 좋아했다.


  그랬는데. 나는 지금 왜 자꾸 나쁜 생각을 하는 걸까. 죽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이유가 없다. 그럼 살아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힘에 부친다. 실행에 바로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하는 내가 한심하고. 주변 사람들이 받는 상처를 외면하는 내가 너무 비겁하고.


  손목이나 허벅지 안쪽을 베고 알약을 한 주먹씩 집어삼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자해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겁이 나서 정말로 죽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싶지 않다.


  겨울은 죽음의 공포를 몰고 온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러기엔 읽고 있던 책의 결말이 궁금하고, 감동했던 영화를 다시 봐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고 싶다. 죽고 싶다는 건 살고 싶다는 말과 같다. 나는 꼭 살고 싶은 것이다. 삶에 미련이 이토록 많은데 자꾸만 죽음에 이끌린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너무 늦기 전에 새 아침이 찾아온다면 그간의 어리석은 생각을 모조리 털어낼 수 있을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떠올리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든다. 생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들. 죽기 전 한 번쯤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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