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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Jan 08. 2024

방 한 칸 신림동 고시원부터 시작했다

두고 떠나온 집처럼


  십 년 전, 나는 본가를 떠났다. 수중에 큰돈이 없던 나는 방 한 칸에 화장실이 딸린 신림동 고시원을 구했다. 그 작은 공간에 침대와 책상과 장롱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정말이지 발 디딜 틈이 별로 없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젖은 우산을 둘 곳이 없어서 바깥 문고리에 걸어두곤 했다.


  가스레인지나 냉장고가 없어 밥을 직접 해 먹지 못했다. 자는 것만큼 당장에 먹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다행히 고시원 근처에 백반집이 수두룩했다. 대부분의 가게가 한 끼에 오천 원을 넘지 않았고 밥은 무한 리필이었다. 나는 덕분에 하루하루 굶지 않고 끼니를 챙겼다.


  그곳에서 일 년 남짓을 살다가 연신내에 낡은 원룸을 얻었다. 문짝이 벗겨지고 장판이 우는 곳이었으나 처음으로 집 다운 집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낮이면 집 안이 훤했지만 겨울엔 외풍이 심해 침대 위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만 생활했다. 창문이 커다란 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낮이면 창가에 서서 동네를 자주 구경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쪼르르 나와 산책하는 봄을, 집 앞 카페에서 빙수를 나눠먹는 여름을, 노란 은행나무 아래에서 무르익은 열매를 줍는 가을을, 마트에서 행인에게 맛보기 귤을 건네는 겨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에게도 행복이 머지않아 보였다.


  그러나 화곡동 반지하로 이사 간 뒤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창 밖으로 가로막힌 콘크리트 벽이 보였고 두꺼운 창살이 세워져 있어서 집이 꼭 감옥 같았다. 집 안의 모든 불을 켜도 어두운 기운은 가시질 않았다. 환기가 되지 않아서 화장실엔 마냥 물때가 꼈고. 설상가상으로 비가 오면 방 안에 지렁이가 죽어 있었다.


  깨끗한 빛과 바람이 그때보다 그리웠던 적은 없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공기가 턱없이 부족한 느낌. 양발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우울과 불안이 들러붙어 몸과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말도 더듬더듬 잘 나오지 않았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은 가장 불쾌하고 불편한 곳이 되었다.


  꾸역꾸역 이 년을 버티고 대출을 받아서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갔다. 무리한 만큼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에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았다. 빛과 바람이 넉넉한 곳에서 살려면 이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구나. 베란다에 화분을 들여 물을 주고 산들바람에 빨래를 말리는 무심한 일상을 바랐는데.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집값이 떨어지네, 마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전세나 월세는 착실히 올랐다. 살던 집 그대로 계약하기도 빠듯해서 적응할 새도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서울 이곳저곳을 유랑민처럼 돌아다녔다. 이사한 집들은 매번 낯설었다. 짐을 다 풀지 않아 어수선한 탓도 있겠지만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 검은 천장만 보고 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처럼 눈치를 본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이 집도 결국 떠나야 한다. 나는 부산한 마음을 뒤로하고 조용히 집 안을 정리한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저 햇볕이 머무르는 방에 모로 누워 바람을 잔잔히 느끼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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