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기 vs 돌아다니기
"시원한 곳에서 맥주 마시며 가만히 있는 게 최고 휴가지."
그와 그녀는 너무 다른 성격이다.
그도 그녀도 내향적이지만 그녀는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반면, 그는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많이 싫어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최소한의 움직임만 허용한다. 단 술자리 약속은 우주라도 날아간다.
아이들은 그와 그녀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아리송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최근에 여행을 소재로 한 방송이나 유튜브가 인기다.
몇 달 전만 해도 먹방이 큰 관심을 끌더니 코로나가 끝나서 그럴까, 여행에 관심이 커지면서 홈쇼핑도 한참 여행 상품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 중 그는 <니돈내산 독박투> 시리즈를 즐겨본다.
개그맨 김준호를 비롯한 김대희, 장동민, 유세윤, 홍인규 구성된 다섯 명은 친분과 장난기 많은 멤버로 구성하고 있다. 여행의 모든 과정을 '복불복 게임'을 통해 진행한다. 출연자 사비로 결제하는 초유의 리얼리티 여행 예능 프로그램으로 첫회부터 해외비행 비행기 값을 제외한 모든 경비를 복불복을 통해 출연진이 부담한다.
열심히 시청하고 있길래, 그녀는 살포시 물었다.
"여행 가려고 열심히 보고 갈려고?"
질문에 시큰둥하더니 " 대리 만족이지. 뭐 하려고 고생하러 가. 저기 가면 저런 곳이 있고, 저런 음식이 있고, 저런 경험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상식으로 채우는 거야."
'헐~!' 그녀는 그와 말에 당황스러웠다. "그럼, 당신은 여행 프로그램 보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당연하듯이 "당연하지! 어떻게 저걸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야?"
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렇다. 그는 움직이는 걸 정말 싫어했다. 꼭 가야 한다면 방콕을 가고 싶다나 뭐라나. 이유도 간단했다.
마사지 잘한다고 하니 마사지받으러 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그가 갑자기 1박 2일로 기장 가자고 했다. 맛있는 게 요리를 먹자는 이유로 가자고 했는데, 아이들은 학업과 귀차니즘으로 거절했다. 결국 그의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 그녀가 함께 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날 그녀는 결심했다. 다시는 그와 단둘이 여행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기대를 잔득한 그녀와 달리 그는 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시장으로 들어갔다. 검색해서 알아낸 맛집을 가지 않고 입구에 있는 가게에 눈길을 주더니 주인과 게 가격을 흥정했다. 그리고 그 가게로 들어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대낮에 술을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술을 못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불타로으고 몸에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올라와 술 마시는 걸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그는 얼굴이 발그레지면서 기분이 고조되었다. 그런 모습을 본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음식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진수성찬 음식이 나오고 게를 먹고 싶다던 그는 맛만 볼 때 그녀는 음식으로 여행 분위기를 냈다. 배도 부르고 술기운이 약간 오른 그는 시장 구경을 가자고 했다. 왜? 가게 위치가 시장 안이니깐. 최소한 거리를 걸으며 먹고 싶었던 마른안주를 구입한 후 그와 그녀가 간 곳은 가게에서 문의했던 숙소로 향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친절했다. 멀리 여행 간 것도 아니고 부산에 있는 곳이니 별 신경 쓰기 않았던 그녀지만, 방에 들어가니 갑갑함이 몰려왔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남은 시간을 이 방에서 머물러야 해?'
들어오자마자 쿨쿨 자는 그를 보며 그녀는 사방으로 막힌 창문으로 인해 속이 터질 듯했다.
혼자 방에서 나온 그녀는 호텔을 구경하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나 구경하러 나갔다. 그녀는 외향적이지만 내향적인 성격으로 주변만 맴돌 뿐 버스나 택시를 타고 바다 구경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 이렇게 지낼 거면 집이 더 편하지..... 이게 뭐야? 돈만 쓰고 기분은 안 좋고. 다시는 같이 오지 않을 거야.'
드렁드렁 코를 구며 자는 그와는 달리 그녀는 밤새도록 방향을 바꾸며 뒤척였다.
그 뒤로 그녀는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다시는 아빠와 여행가지 않을 거야." 아아들도 이해하는 듯 "다음에는 우리랑 가요."라며 웃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말 휴식만을 즐기려 가는 사람과 여기저기 놓치지 않고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자였고, 그녀는 후자였다. 그는 돌아다니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녀는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정말 다른 그와 그녀. 어떻게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도 그녀도 알지 못했다.
정말 결혼은 나와 정 반대인 사람과 살아가는 것일까?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지금도 휴가라며 지내고 있는 그는 시원한 차림으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