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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19. 2023

겨울에 태어난 아이

< 공감 에세이 >


어제 큰 딸 생일이었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1월에 태어난 아이.

아이 가졌을 때 이 아이만큼은 겨울에 태어나지 않길 바랐다.

내가 2월에 태어나 '생일'이라는 축하를 진심으로 받은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게를 운영했다.

장사하는 집은 다 안다. 평범한 가정집과 다르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평일날 일하고 주말에 쉬었지만 우리 집은 평일날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그야말로 24시간 365일 일하며 쉬는 날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 싫었다.

명절, 밸런타인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그리고 생일.

그날은 다른 날 보다 몇 배나 더 바쁘고 아빠와 엄마가 칼 날 위에 춤추는 무당만큼 예민했다.


내 생일은 늘 '졸업식' 하는 날에 끼여있다.

나도 축하받고 싶은데 축하를 해줘야 한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또한 봄방학 때라 친구들과 생일파티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 번 했던가.




세월이 흐르고 가정을 이루면서 내 아이만큼은 겨울에 태어나지 말고 방학 때만은 피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 나 왜 1월에 태어났을까요? 오늘 우리 반 친구 생일이었는데 선물을 많이 받아 부러웠어요. 방학 때 생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선물 많이 받았을 건데요. 억울한 생각이 들어요."

작년 같은 반 친구가 다른 친구들한테 선물 받은 걸 보고 부러워 죽겠다며 입을 삐죽 내민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내가 네 심정을 완전 잘 알지. 엄마도 그랬단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장사하느라 남에게는 미소를 언제든지 보여주었지만 나에게는 참 냉정한 표정만 보여준 기억만 난다. 자식들에게는 이상하게 살갑게 하기가 어려우셨나 보다.

그래서일까.

당신 자식들 생일은 그냥 지나쳐도 며느리 생일은 꼭 챙겨준다.

물론 남동생을 위한 것이겠지만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해가 바뀌고 어제 큰 아이 생일을 조촐하게 보냈다.

"뭐 받고 싶은 선물 없니?"

"음... 엄마가 직접 쓴 편지와 money요.ㅎㅎㅎ"

하며 짓는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일하고 중간에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비어있을 때 열심히 움직였다.

먹고 싶다는 알탕 요리 재료와 케이크를 미리 주문해야 했다.


미리 먹고 싶은 케이크를 사진 찍어 놓았기에 확인하고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갔다.

'헉! 뭐가 이리 비싸!'

뉴스에서 연일 떠드는 물가 상승 실감이 절로 났다.

크지도 않은 케이크 값이 삼만 원이 넘었다.

혹시 몰라 적립금을 검색하였다.

'역시 안 쓰고 모아두길 잘했군.'

적립금과 할인을 모으니 원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케이크 보며 즐거워할 아이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일과가 다 끝나고 어서 생일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저 멀리 보이는 버스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추운지 온몸이 떨렸다.

감기가 오려나.

신호가 바뀌는 걸 보고 얼른 버스를 탔다.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연락해 딸을 만났다.

"엄마!" 하며 함박미소로 나에게 오는 딸이 너무 좋았다.

서로 포옹하고 후다닥 집으로 걸어갔다.


요리를 이제 막 시작해야 했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먼저 케이크 먼저 먹자고 했다. 촛불을 끄기 전 손편지와 선물을 주고 케이크를 준비했다.

케이크와 손 편지를 보더니 울 것 같다며 좋아했다.

"후~"

소원을 한참 간절하게 빌더니 한 번에 촛불을 껐다.

알탕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케이크 한 조각을 삼등분해서 나누어 먹었다.

달지도 않고 담백한 맛에 모두 만족했다.


마침 알탕 냄새가 가족 식욕을 당겨 초스피드로 생일상을 차렸다.

금방 새로 갓 지은 밥, 얼큰한 향으로 유혹하는 알탕, 그리고 나물과 밑반찬으로도 충분한 생일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처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생일상이었지만 아이는 너무 좋아한다.

나를 꼭 안아주며 "태어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 딸이라 너무 좋아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난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딸에게 받았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어쩌면 나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생일을 정말 진심으로 축하한다.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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