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거 아님
-엄마 산타할아버지 오려면 몇 밤 남았어요?
-오늘이.. 19일이니까, 아. 이번 주 토요일에 오시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대화하다가 깨달았다. 이런 무심함이라니. 크리스마스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니. 그리고 그걸 모르고 있던 내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니.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축제 분위기가 나지 않기 시작했다.
라떼는 말야. 이맘때면 거리마다 반짝반짝 조명들이 휘황찬란하고 여기저기서 울리는 캐럴로 사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그랬는데 말이야.
내가 어른이 되어서 그런 걸까? 육아 고립기에 살고 있어서? 신도시 외곽이라 상가 따위는 볼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은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과는 다른,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마음은 이거다.
얼마 전 공방에서 수업을 듣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와 눈이다." "눈이 너무 예쁘게 와요." 하며 창가로 다가가는데, 나와 동갑인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마음의 소리 "아이 썅."
"하하하 왜요. 눈 오니까 좋구만."
"아 눈 쌓이면 운전하기 힘든데."
"그건 그래요. 흐흐."
내리는 눈과 함께 마음의 소리를 들켜버린 엄마들은 민망함보다는 걱정이다. 애들 하교시간 됐는데 미끄러워서 어쩌나. 운전하다 사고 나면 어쩌나.
나이를 먹는 건 이런 데서 오는 시각 차이일까.
나는 원래 눈을 참으로 좋아하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 눈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는 말이다. 수족냉증녀의 겨울은 유독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불편했지만 바깥 기온이 차가운 만큼 포근함과 따뜻함의 느낌들이 좋았다.
거리에는 보기만 해도 따스한 조명들이 가득했다. 상가마다 폭닥 거리는 캐럴들이 울려 퍼졌다. 거리는 추웠지만 그 거리를 걷는 나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휴일 아침 눈을 떴는데 아직도 밖은 어둡고 공기는 쌀쌀하다. 목화솜을 가득 넣은 무거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곰처럼 웅크리고 다시 잠으로 빠져들 때보다 안락한 기분을 느낀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차가운 발을 엄마 엉덩이에 찔러 넣으면 티브이에 고정된 눈을 떼지도 않고 자신의 엉덩이 아래 들어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딸의 발을 손으로 감싸주던 엄마의 따스함이 편안했다.
한 살 더 먹으면 어떤가.
크리스마스가 설레던 젊음은 지나갔지만 한 해도 무탈히 잘 버텨냈다는 다독임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내가, 마음만은 젊은이의 그것보다 강하고 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내년을 준비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나이가 되었다.
반갑다 중년의 나야.
모든 사진 출처_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