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보상

지난한 시간을 지혜롭게

by 새벽책장

짧은 머리를 꽁지 묶은 어린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그의 한쪽 어깨에는 '희망찬 어린이집' 가방이 둘러메어져 있다. 두 손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뒤쪽에서 쫄쫄 따라가는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는 이미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하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자리에 드러누워서 떼를 부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목소리에 불만을 담아 "엄마"하고 한 숨 쉬고 또 "엄마아"부른다.

어린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빨리 와 형아 끝날 시간 다 됐단 말이야."

종종 걸어 사라지는 어린 엄마와 어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차가운 바람만큼 고단했다.


어린 엄마가 지나가고 나도 서둘러 횡단보도 앞에 섰다. 이제 신호 하나만 지나면 집이다. 둘째만 집에 두고 나와서 마음이 급했는지 신호가 꽤나 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키가 비슷해 보이는 연인이 팔짱을 꼭 끼고 몸을 밀착시킨 채로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정하고 선 해 보였다. 특히 표정이.

표정이 예쁘다는 생각뒤에 무엇인가 어색하다고 느꼈는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다 드러나 보였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마스크가 없는 얼굴은 어색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전에 반갑고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사랑스러운 웃음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는지 여자는 남자의 팔을 더 꽉 잡으며 지금보다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사로워진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그들과 점차 가까워졌다. 가까이 오니 표정이 더 잘 보인다. 그들의 표정에 흐뭇해졌다.

-여자가 좀 나이가 있어 보이네. 남자는 꽤나 동안이고. 음, 가만 보니 남자의 옷이.. 저거 중학교 체육복이잖아.

앗, 남자애는 애였고, 둘이 닮은걸 보니 여자는 엄마인 듯했다.

엄마가 아들의 팔짱을 그렇게도 사랑스럽게 끼고 걸을 일이야. 부럽게.

엄마만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다. 연인처럼 남자아이도 엄마의 말에 맞장구치며 웃고 있는데, 한쪽 손은 바지주머니에 상남자처럼 끼고 있어서 아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아들이 크면 저렇게 달콤할 수도 있구나.

나도 몇 년만 있으면 아들과 다정하니 팔짱을 끼고 소통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마스크가 해제된 지 꽤 지났는데도 길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그만큼 다들 조심하며 다니는 것도 있을 것이고, 마스크를 벗는다는 행위가 매우 어색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내마스크가 해제되고 나니 이제야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들의 표정이 저렇구나. 새삼 느꼈다.

날씨까지도 3월의 봄 같은 햇살이 비치고 있어 마음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늘 한결같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일관성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던데, "일관성이 없는 것이 우리의 일관성이다."라며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고단함에 지친 어린 엄마의 표정과, 사춘기 아들과 깔깔 웃어대는 중년의 엄마 표정이 무척 대조적으로 느껴졌던 날이다. 영유아와 사춘기, 그 사이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린 엄마의 고단함은 전적으로 이해되면서도 사춘기 아들 엄마의 그 해사로운 웃음이 나의 미래에 과연 있을까, 자못 걱정스러운 마음도 살포시 들었다.

사춘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양육방식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나의 고단함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들었다. 앞으로 사랑스러운 관계를 잘 만들어가면 지나간 시간을 보상받는 사춘기가 나에게도 올까.


지난 3년간 지겹도록 써댄 마스크 덕분에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표정들의 다정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고된 시간이 지나 우리의 관계가 연인의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혼직전의 부부처럼은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아이가 아니라 내가, 힘을 내야 한다는 다시 그 고리타분하지만 원초적인 이론으로 돌아오고 만다.


오늘 만난 두 엄마의 모습을 항상 기억해야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꽤나 중요한 일이다.




이전 02화나를 분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