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의 힘을 뚫고 지나가는 작지만 강한 존재
올해 여름도 태풍 없이 지나갔다. 여름에 날씨 뉴스를 보면 항상 고향 생각이 난다. ‘다행히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지 않고 동해 바다로 경로를 틀었다’ 같은 속 편한 멘트를 들으면 더더욱 그렇다. 그중 꽤 여럿은 해안을 훑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선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을 세 번은 겪어야 여름이 다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태풍이 다 지나가면 확실히 가을이 왔다. 그땐 그렇게 계절의 경계가 명확했다. 이제는 계절의 속성이 무더위와 국지성 호우로 대체된 것 같다. 하지만 예전의 패턴에 익숙한 내 무의식은 계속 태풍을 의식하고 있다.
강한 태풍이 그렇게 자주 오는데도 그땐 다들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거의 쓰지도 표현인 ‘안전불감증’이 사실상 시대정신이던 2천 년대 초반, 웬만한 재난이 아니면 휴교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태풍은 보통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후에 왔는데, 일기예보에서 아무리 조심하라고 떠들어도 일단 학교에 다 나간 후에 정말 심각할 것 같으면 점심급식 후에 돌려보냈다. 한 번은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인 곳을 지나가려고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줄줄이 손을 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뭘 모르던 때라서 굉장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학생 때는 등하굣길이 유독 길었다. 폭풍우를 맞으며 이 긴 길을 걸었던 시간이 지금은 아름답게 왜곡된 기억으로 남아있다. 걸어서 30 분 가량의 거리인데, 버스 배차 간격도 대략 30 분이라서 아무도 버스를 타지 않았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비바람을 뚫고 집까지 걸어갔다.
그런 날씨엔 준비를 잘해야 한다. 교복 대신 체육복 반바지로 갈아입고 방수가 되는 긴 잠바를 입어야 한다. 머리가 젖지 않게 최대한 높게 똥머리를 만들고, 뒤집혀도 부러지지 않는 낭창낭창한 3단 우산까지 갖추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태풍 하교에 적합한 차림이 완성된다. 우산이 최대한 제기능을 하려면 풍향이 바뀔 때마다 우산 방향을 잘 돌려야 한다. 그때 익힌 우산 조종 스킬은 지금도 굉장히 유용하다.
재작년인가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졌을 때, 나도 강남에서 야근을 하다가 허둥지둥 퇴근을 했었다.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가 누수로 고장 나서 사람이 갇혀서 119에 전화를 했더니 통화 대기 인원이 2백몇번대였다는 괴담 같은 증언을 들었다. 다행히 그분들은 기다림 끝에 구출됐지만, 나중에 뉴스를 보면서 내가 그날 여러 위험을 몇 발 차이로 스쳐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은 아무래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지는 못할 것 같다. 20년 전의 태풍들과는 달리.
그러니까 그 옛날의 기억이 유쾌하게 남아있는 건 아마, 진짜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의 위험을 뚫고 간 경험이라서 그렇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어떻게 저떻게 만들어 준다던 니체의 말처럼. 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뚫고 지나가는 작지만 강한 존재였던 그 짧은 순간을 의기양양하게 음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