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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꿈을 향한 시작

파리 5구에 위치한 19세기에 건축된 아파트의 고풍스러운 창틀을 통해 살포시 스며들어온 햇살이 퀸 사이즈 침대 위로 따스하게 비춘다. 유리창에 반듯한 네 칸의 구역을 나누는 19세기에 디자인된 창틀을 통해 스며 들어온 오전 7시 30분의 햇살은 이마와 관자놀이를 따뜻하게 데워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게 한다. 프랑수아(François Laurent)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떠 침대 옆에 놓은 자그마한 연그레이빛의 흰색 협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얼굴 일부인 뿔테 안경부터 찾는다. 베이지색의 뿔테 안경은 창백한 안색을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깊숙이 패인 그의 두 눈을 적절하게 가린다. 반자동적으로 안경을 쓰고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마리-킴의 얼굴을 살핀다. 마리-킴의 표정은 숙면 그 자체의 모습이다. 평온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꿈을 꾸고 있다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프랑수아는 마리-킴(Marie-Kim Aubert)[1]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욕실을 향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긴다. 욕실 벽에 난 작은 창을 통해서도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조가비 모양의 아이보리 색상 세면대를 비추고 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세면대를 향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도의 차가운 물은 이제 막 기상한 프랑수아의 정신을 깨우기에 안성맞춤이다. 프랑수아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나와 곧장 주방으로 향한다. 수동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고 그라인더 축을 서서히 돌려 커피를 곱게 간다. 원두가 분쇄되면서 향긋하면서 고소한 커피 향이 나기 시작한다. 2인용 모카포트에 원두를 넣고 보일러에 물을 채우고 스토브 위에 올린다. 3분 정도 지나자 보글보글 고소하고 향기로운 커피 향이 파리 5구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를 가득 채운다. 커피의 향이 매혹적이었던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에 취해 있었던 마리-킴이 살포시 눈을 뜬다. “프랑수아, 벌써 일어난 거야?”


프랑수아는 이제 막 잠에서 깬 마리-킴을 보며 싱긋이 웃으며 말을 건다. “마리-킴, 잘 잤어? 너무 곤히 잠든 것처럼 보이길래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 이에 대해 마리-킴이 길고 짙은 흑발을 뒤로 쓸어 넘기며 대답한다. “응, 잠을 잘 잔 것 같긴 한데, 잠을 자는 내내 꿈속에서 글씨가 떠다녔어. 글씨를 잡으러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어. 프랑수아, 나도 에스프레소 좀 줄래? 커피가 필요해.”


“마리-킴, 요즘 너무 일에 몰두한 것은 아니야? 꿈에서도 글씨가 보이다니….”


마리-킴은 프랑수아가 전해준 에스프레소에 라빠르쉐[2] 각설탕 한 개를 넣어 휘휘 젖는다. “응. 글씨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연구실을 떠나면 바로 잊고 나의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꿈에서까지 보이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옅은 주근깨가 한가득 자리 잡은 광대를 비비며 말하는 마리-킴의 까만 두 눈동자는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별처럼 반짝인다. 꿈에서 본 글자를 현실에서 기억해 내려는 걸까.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3] 동양 고문서 파트에서 연구원로 일하는 마리-킴의 하루는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 글씨로 시작되었다. 파리 13구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초대형 도서관으로 도서 및 인쇄자료 1500만 권, 필사본 37만 부, 정기간행물 39만 종, 사진 및 포스터 1500만 부, 음악자료 200만 장, 음성자료 150만 개, 비디오 26만 개, 멀티미디어 자료 17만 개, 동전 및 메달 등을 59만 개 소장하고 있다 [4]. 1368년 샤를 5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루이 15세 때 그 규모가 증대되었다. 1793년 최초로 민간에게 개방된 도서관이 되었고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인쇄 자료와 문화재들이 소장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하이픈으로 연결된 ‘마리-킴’은 ‘지영’과 같은 하나의 이름이다. 작중 인물 마리-킴의 성은 오베르이다. Marie-Kim Aubert


[2] 비정제 설탕으로 국내에는 앵무새 설탕으로 잘 알려져 있다.


[3] 프랑스 국립 도서관 건축 프로젝트를 주도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표령의 이름을 따서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4]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의 ‘세계의 도서관’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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