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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렌 공주의 미뉴에트>와 첫 만남

오르세 미술관 회화 파트의 학예사로 일하기 시작한 프랑수아는 수석 학예사 잔느(Jeanne Mathieu)와 함께 <인상주의자들의 혁명(La révolution impressionniste)>이라는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루앙 대성당(La Cathédrale de Rouen),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발레리나 조각상 시리즈(Danseuse series),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피리 부는 소년(Le Fifre)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자화상(Self-portrait)까지 인상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작품을 포함하여 회화와 조각 총 300여 점이 소개되는 대형 전시이다. 19세기 인상파의 연장선 상에 위치한 나비파(Les Nabis)의 주요 작품도 전시 후반부에 함께 선보이기로 했다. 전시를 개최하기 앞서 작품의 전반적인 컨디션 체크와 복원의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프랑수아는 수석 학예사 잔느와 함께 복원실로 찾아갔다. 미술관 지하에 위치하여 자연광이 완벽히 차단된 암실의 느낌을 자아내는 복원실은 온, 습도[1]가 그야말로 완벽히 조절되는 오래된 작품을 위한 공간이었다.


각종 물감의 피그먼트가 자아내는 특유의 화학적인 냄새와 50%의 습도는 복원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넌지시 알려준다. 역사가 오래된 회화 작품들의 표면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빛바랜 색을 교정하고 갈라진 물감 틈새를 메꾸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복원팀은 신중을 가해 큰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복원사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복원을 위해 특수 제작된 돋보기를 착용하고 작업을 한다. 마스크를 착용해 세월이 녹아든 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비말로 인해 그림이 손상되는 것을 차단한다. 눈과 입을 가리다 보니 꼭 필요한 대화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복원실에 펼쳐진 넓은 5-6개의 직사각형 대형 테이블 위에는 반 고흐의 자화상과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몇몇 작품이 올려져 있다. 복원사들은 헤어 밴드 타입의 이마에 착용하는 조도가 높지 않은 특수 랜턴과 돋보기를 끼고 작품의 컨디션을 찬찬히 살핀다. 프랑수아는 그들 뒤에 서서 작품을 조용히 바라본다. 미술관 측에서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백 년이 넘게 흐른 세월로 인해 생긴 물감의 미세한 갈라짐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인가 보다. 잠시 후 복원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설치팀이 작품이 담긴 크레이트[2]를 수장고에서 추가로 가지고 온다. 프랑수아는 설치팀이 가지고 온 크레이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작품이 들어 있을까?’


총 300여 점의 작품의 컨디션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복원팀과 설치팀의 손길이 분주하다. 명작을 세심하게 다루는 작업을 하다보니 예민해진 복원팀과 설치팀을 위해 프랑스아와 수석 학예사 잔느도 말을 아낀다. 설치팀이 복원실 바닥에 사이즈가 상당히 큰 크레이트를 수평으로 눕히고 드릴로 크레이트의 뚜껑을 열기 시작한다. 드르륵 거리며 드릴 소리가 나고 크레이트의 뚜껑이 열린다. 조심스럽게 크레이트의 뚜껑을 복원실 벽에 기대에 세워두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두었던 습자지를 서서히 걷어낸다. 복원실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품은 다름 아닌 모리스 드니의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였다. ‘피아노 앞의 마르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마리-킴과 두 번째 만남 때 프랑수아가 눈치 없이 열변을 토해내었던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될 줄 예상 못했던 프랑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빼내어 작품 쪽으로 몸을 다가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복원팀장 루이(Louis Lambert)가 프랑수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스크를 건넨다. 가벼운 미소로 화답하고 마스크를 받아쓴 프랑수아는 복원팀과 함께 작품을 찬찬히 살핀다. 복원팀은 컨디션 리포트[3]에 작품의 현재 상태를 메모하고 이전의 기록과 비교한다. 컨디션 리포트에는 이내 수많은 동그라미가 쳐지고 메모에는 브이 표시가 더해진다. 복원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골똘한 표정을 짓는다. 프랑수아는 복원팀장 루이를 향해 질문을 한다.




모리스 드니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Le Menuet de la Princesse Maleine)

1891, 캔버스에 유채, 95*60 cm, 오르세 미술관 소장

© Musée d’Orsay, dist. RMN-Grand Palais / DR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루이는 돋보기를 이마 위로 올리고 이마에 송글송글하게 수 맺힌 땀을 옷소매로 닦아낸다. 그리고 조심스레 한마디 말을 뱉는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복원을 해야 할 것 같아. 갈라짐도 많고 변색도 많이 일어났고. 아무래도 작품 표면 위에 코팅된 바니쉬를 벗겨내야 할 것 같네. 이게 간단하면서도 섬세한 작업이라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루이는 아직은 정확한 판단을 못 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설치팀에게 작품을 테이블 위로 올려달라고 요청한다. 안정성 확보를 위해 두 개의 대형 테이블을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습자지를 넓게 펼치고 스펀지를 올린 뒤 마지막으로 작품을 위에 올려놓는다. 네 명의 복원사들이 작품 주위를 에워싼다. 조심스럽게 프레임부터 캔버스 위에 쌓인 먼지를 최고급 염소털 브러시로 털어낸 후 이마 위에 착용한 헤어 밴드 타입의 랜턴을 하나둘씩 켠다. 회색 빛 먼지를 털어내니 창백하게 보였던 마르트의 핑크 빛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옅은 푸른색 눈은 마치 프랑수아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프랑수아와 함께 그림을 살펴보던 수석 학예사 잔느가 프랑수아를 보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수아는 이 작품을 좋아하나 봐?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윽하게 그림을 바라보네. 실제로 모리스 드니는 작품의 모델이었던 마르트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마르트의 초상을 여러 점 남겼는데, 이 작품이 그중에서 가장 처음에 그려졌어. 모리스가 살아 있는 동안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지. 모리스의 뮤즈였던 마르트의 초상화를 늘 곁에 두며 살았다고 해.”


“정말로 사랑했나 보네요….”


“응, 당시에도 애처가로 유명했나 봐. 프랑수아도 이미 알겠지만, 모리스는 인상주의를 벗어나 상징주의를 시작하는 작가잖아. 그래서 작품 배경에 그려진 수많은 점들은 폴 시냐크의 점묘화의 점과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고 있어. 폴 시냐크는 요즘 컴퓨터의 픽셀처럼 색의 단위로 반영하여 질서 정연하게 색을 정렬해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면 모리스의 경우에는 리듬감을 표현하기 위해 점을 사용했지. 실제로 모리스는 폴 시냐크의 점묘화 작품은 너무 과학적이라면서 자기와 비교하는 것을 반대했었다고 해.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모리스도 자포니즘에 영향을 받아서 그림을 평면적으로 그리기도 했고. 모리스의 초상화는 실제의 모델과는 좀 다른 이미지로 그가 느끼는 바를 표현했어. 상징주의가 생각, 내적 환영, 꿈을 표현한 미술사조잖아. 모리스도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보고 느끼는 마르트를 표현한 거지. 물론 실제의 마르트의 모습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겠지.”



폴 시냐크

저녁 무렵의 아비뇽(Avignon, Soir)

1909, 캔버스에 유채, 73 * 92 cm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 Hervé Lewandowski



“네,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는 정말 신비로우면서 멋진 그림 같아요. 피아노 위의 악보에 대한 내러티브도 해석해 내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에요. 모든 요소들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프랑수아와 잔느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루이가 싱긋 웃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마스크를 쓴 그의 미소는 보이지 않지만 눈웃음을 통해 그도 이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랑수아는 앞으로 복원실에 자주 와야겠어? 1891년에 그려진 그림이니 우리 팀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복원하려고 해. 프랑수아도 종종 와서 복원 프로세스를 체크해 봐. 내가 상상해 보건대, 아마 마르트가 입고 있는 에이프런의 자줏빛 플라워 패턴들은 바니쉬를 걷어내면 더 쨍한 마젠타 컬러로 보이게 될 거야. 그럼 작품이 한층 더 밝아 보이고 화사해 보이겠지. 그렇게 되면 전혀 새로운 작품처럼 느껴질 거야.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기대가 되는 복원 작업이야.”


“네, 저도 자주 와서 상태를 체크해야겠어요. 물론 복원팀이 잘해주시겠지만, 저도 이번 기회에 복원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어요.”


“하하, 언제나 환영이지, 앞으로 종종 보자고!”


골드빛 액자 프레임 속의 신비로운 눈빛을 한 마르트의 눈동자는 먼지를 벗겨내니 더 화사한 푸른빛으로 반짝거린다. 마치 프랑수아에게 남몰래 말을 거는 듯하다. 프랑수아도 물끄러미 마르트를 바라본다. 그런 프랑수아를 잔느가 재촉하듯이 부른다. “프랑수아, 이제 학예실로 돌아가자. 루이, 다음 주에 한 번 더 들리게요. 그동안 수고 부탁해요.”


잔느와 함께 지하의 복원실의 두꺼운 철제문을 열고 나온 프랑수아는 설레는 심경을 전한다. “잔느! 저 작품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그림인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전시장의 불빛이 연출해 내는 이미지가 아닌 작품 그 자체를 보니 설레었어요.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르트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마자, 저 작품은 생명력이 느껴지지. 뮤즈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서 그런가 봐. 프랑수아, 이러다 파트너가 질투하겠어, 으응?” 잔느는 웃으며 눈을 살짝 흘리며 말한다.


“안 그래도 집에 돌아가면 이야기해야겠어요. 여자친구를 알아갈 무렵에 이 작품에 대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는데, 오늘 가면 더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오르세 미술관의 긴 복도를 따라 학예실로 돌아가는 프랑수아와 잔느의 뒷모습은 실내 정경을 묘사한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모습에 조금 전 크레이트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다시 본 마르트의 따스한 시선이 머물러 있다.



          





[1] 회화와 드로잉 작품의 경우 온습도 조절이 특히 중요하다. 온도는 25도씨, 습도는 50%를 조절을 목표로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온습도 조절을 한다. 이 기준에서 5% 정도 범위 내에서의 오차는 허용한다.





[2] 미술품이 담긴 상자로 보통 목재로 제작되나 물에 뜰 수 있는 특수 소재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삽입된 스펀지가 액자 프레임과 크레이트 상자 사이에 빈틈없이 탄탄하게 고정한다.





[3] 컨디션 리포트는 작품의 현재 상태를 체크하는 문서로 보통 이전의 컨디션들이 누적되어 기록되어 있다. 작품의 손상도와 복원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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