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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킴의 특별한 시작

마리-킴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프랑수아는 마리-킴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한다. 탱글탱글 과육이 살아있는 선홍색의 방울토마토, 보랏빛의 래디쉬, 짭조름한 페타 치즈, 얇게 슬라이스 된 어니언과 아몬드, 싱싱한 로메인 상추가 적절한 크기로 잘라진 샐러드를 준비하고 화이트 와인이 소스로 들어간 향긋한 봉골레 파스타를 조리했다. 파스타에는 모시조개들이 큼지막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 아늑한 집안 구석구석에 맛깔스러운 요리의 향기가 펼쳐진다.


때마침 아파트 대문을 열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쳐 있던 마리-킴은 요리 냄새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미소를 짓는다. “어머, 프랑수아, 봉골레를 하고 있었나 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스타잖아!”


“응, 오늘 왠지 봉골레를 해주고 싶었어!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르니 싱싱한 모시조개가 있더라고. 보자마자 마리-킴 생각이 났지!”


마리-킴은 서둘러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프랑수아가 정성껏 차린 식탁에 앉는다. 화이트 와인과 반짝이는 와인잔도 함께 준비했다. 간단하고 달콤한 건배를 한 뒤 마리-킴이 프랑수아에게 묻는다. “프랑수아, 오늘 신나는 일이 있었나 봐? 얼굴 표정에 다 쓰여 있어.”


“어, 오늘 엄청난 일이 있었어. 모리스 드니의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를 정말 가까이에서 봤거든. 전시 작품 리스트에 있던 작품이기도 한데, 컨디션 체크하느라 복원실에서 아주 상세히 살펴보았어. 전반적인 복원이 필요하다고 결정이 났고 나도 종종 복원실에 가서 복원 과정을 체크하려고 해. 마르트의 표정이 정말 생생하더라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눈이 반짝거렸어.”


마리-킴은 소리 내어 활짝 웃으며 “프랑수아, 사랑에 빠진 거 아니야? 이제 좀 슬슬 질투가 나려고 하는데? 1891년에 그려진 인물화가 어떻게 살아있어? 모리스 드니가 눈과 표정의 묘사를 아주 잘했나 봐?”


프랑수아도 웃으며 화답을 한다. “응. 맞아, 생동감 넘치는 묘사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어. 마리-킴은 오늘 어땠어? 인쇄 관련한 전시를 계획 중이라고 했잖아.”


“지금 전시 작품을 리스트업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유물을 넣냐 마냐 기로에 서 있어.”라고 대답하는 마리-킴의 표정은 달가왔지만은 않다. 다소 무거운 마리-킴의 표정을 보며 프랑수아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는다.


“전시를 하면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는 건이 있어서…. 『직지심체요절』이라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유물인데 우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거든. 간단히 『직지』라고 부르기도 해. 이 유물의 전시유무를 관련된 부서가 함께 고민하고 있어. 워낙 오래된 유물이기도 하고 또 대한민국 정부가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하기도 하거든. 좀처럼 전시를 하지 않는 유물인데, 최초의 인쇄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서 인쇄에 관련된 전시에서는 또 빠질 수 없는 자료이기도 하지. 그래서 다들 고민 중이야.”


“아 그렇구나. 마리-킴은 『직지』를 실물로 본 적이 있어?”


“아니, 실제로 본 적은 없어. 전시가 결정되면 이번에 보게 될 것 같아. 나도 프랑수아처럼 컨디션 체크도 하고 『직지』에서 어떤 페이지를 전시할지 결정해야 해. 해당 내용에 대한 프랑스어 번역본도 작성해야 하고.”


오늘 모리스 드니의 작품을 보고 신이 난 프랑수아와 달리 마리-킴의 표정은 설렘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살짝 그늘이 드리워진 착잡한 쪽에 가깝다. 프랑수아는 마리-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묻는다.  “마리-킴, 그래서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마리-킴은 입에 프랑수아의 정성이 담긴 봉골레 파스타를 넣고 손사래를 친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왠지 마음에 알게 모르게 부담이 가. 나도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데 왠지 대한민국에서 온 유물이라고 하니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했던 대리 공사가 수집품으로 프랑스로 가지고 왔데. 이렇게 말하면 좀 억지인 걸 나도 알고 있는데, 어떤 면은 프랑스로 입양된 나랑 처지가 비슷한 유물 같아. 프랑스인이 데리고 왔고 그 뒤로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 쭉 살고 있는 거지.”


와인잔에 담긴 무스카트 향이 퍼지는 달달한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프랑수아가 대답한다. “아, 그래서 오늘 퇴근하는데 유달리 지쳐 보였구나, 마리-킴”


“응, 퇴근길에 오늘 회의한 내용이 계속 생각났어. 프랑수아도 알다시피 나는 퇴근하면 모든 걸 연구실에 내려두고 집으로 돌아오잖아? 그런데 『직지』에 관해서는 계속 생각이 났어. 사실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한국에서 온 친구들도 없고.”


프랑수아는 테이블로 손을 내밀에 마리-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프랑수아 손 끝의 따스한 온기가 차가워진 마리-킴의 손에 전달된다. “마리-킴, 부담 가지지 말고 아주 천천히 마리-킴만의 속도로 『직지』와 대한민국에 대해서 알아가 봐. 부담되면 조금 쉬었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마리-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그리고 최초의 인쇄본이라니 마리-킴에게도 좋은 연구성과가 될 것 같아. 안 그래?”


“응, 그래야지. 그나저나 프랑수아, 오늘 파스타가 정말 맛있다. 화이트 와인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고마워.” 마리-킴은 대화주제를 저녁 메뉴로 서둘러 변경하고 싶어 한다.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보인다. 프랑수아도 이에 맞춰 저녁 메뉴로 화제를 바꾼다.


“그지? 내가 오늘 정말 특별히 준비했다니까. 생 딜[1]을 넣어서 더 향긋할 거야” 프랑수아는 원래도 창백한데 오늘따라 더 착잡해진 지친 마리-킴의 얼굴을 보며 잠자리에서 꼭 껴안아 줘야겠다고 다짐한다.



          





[1] 허브의 한 종류로 해산물 요리를 할 때 주요 사용한다. 강한 향이 해산물의 비린내를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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