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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인들의 동선 혹은 사선(死線)

23일간의 임정로드_Chap.2

by 모래의 남자
…세관건물이 열리자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곳에 다나카 육군대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때 총격이 발사되었다. 세 번째 총탄을 발사하면서 김익상은 폭탄을 던졌는데 아스팔트에 떨어졌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폭탄을 던진 후에도 다나카를 향해 두 발을 더 발사했다. 그 후 바로 한구로를 향해 도망하면서 교차로를 건널 때 또 한 발을 발사하였다. 그는 구강로를 향해 거리를 질주하다 방향을 바꿔 도망갔다.

그의 손에 습관적으로 담배를 쥔 채 도망가던 김익상은 구강로로 꺾어졌지만 외국인과 중국인 군중이 그를 추적했다. 그는 사천로 어귀의 파크 유니온 은행에서 갑자기 정지하여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아 중국인 손수레 장수의 하복부를 맞혔다. 그리고 나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홍콩 상해은행 건물까지 뛰었다.

추적하는 군중과 합류한 톰슨 씨는 범인을 붙잡아서 함께 도로 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국인 범인(김익상)은 그를 떼어 내려고 총을 발사하자 첫발이 가슴에 맞았다. 범인이 다시 도망가기 전에 미국인 증권 중개인 호라스 규릭의 머리를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덮쳐 총을 빼앗았다.

김익상과 오성륜은 모두 한국혁명당(Korean Revolutionary Party) 소속임을 시인했으며 체포된 이후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김은 “나는 단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뿐이다”라고 했으며, 오는 “우리의 조국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우리의 손으로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상해공동조계공무국경무처 한인독립운동관계문서>




상하이가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몇 가지 유리한 조건 덕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던 프랑스 조계지는 비교적 안전한 피난처였지만 언제든 위험을 초래할 변수 또한 적지 않았다.


조계지를 관리하던 프랑스 당국은 초기에는 한인 독립운동에 일정 부분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일본 영사관의 압박이 거세지자, 그 기류는 점차 탄압에 협조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여파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민족운동에 미칠 영향을 의식한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다.

1920년대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조계지 관리 차원에서 프랑스 당국이 임정 요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한 일이었다. 이 리스트는 일본 측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매우 위협적인 자료였고, 실제로 이후 요인들의 활동은 점점 더 제약을 받으며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이후 프랑스는 조계지 내에서 일본이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는 것에 적극 협력했다. 이러한 기조 속에 안창호·조봉암 같이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은 평소처럼 활동하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체포됐다.

상하이 영경방 입구

그때나 지금이나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는 복잡한 구조로 인해 안전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곳곳을 두 발로 걸어보면 큰길 안쪽으로 좁은 골목골목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년 전에는 길은 좁고 골목은 더 많았을 것이다. 요인들이 일본 경찰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그들을 따돌리고 도주하기가 용이한 구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아무래도 길이 복잡하면 그만큼 활용할 동선이 다양했을 테니.


조계지 내 임시정부 청사들과 요인들의 거처가 모여 있던 영경방 일대를 반복해 걷다 보면, 눈앞에 그들의 발자국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오랜 시간 개발을 비껴간 골목들은 짧고 복잡하며 마치 개미굴처럼 얽혀 있었다. 대부분 건물은 낮아 지붕을 타고 넘기에도 좋았고, 좁은 골목 어귀마다 몸을 숨길 틈새가 있었다. 그 속에서 요인들이 어떤 판단으로 무슨 선택을 했을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반대로 그만큼 위험도 컸을 것이다. 잠복하고 있던 이들과 맞닥뜨리거나 불운하게도 제압을 당했을 경우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요인들은 늘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요인들이 임무 수행을 위해 이동할 때 항상 엄청난 긴장 속에 움직여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시 약간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겠지만, 달아나는 요인에 빙의해 구시가지 뒷골목을 이리저리 내달려보기도 했다. 복잡한 골목길들은 대체로 퇴로가 계속해서 나타났지만, 일순간 길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히고 나면 등 뒤에는 누군가가 겨눈 총구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조계지 뒷골목

그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체념에 맥이 풀렸을까. 아니면 그 순간에도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판단과 계산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을지도 모른다. 총탄을 겁내지 않고 최후의 반격을 시도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두려움 또한 없지 않았을 터다. 이렇게 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절망감, 다가올 무자비한 고문에 대한 공포 같은 것들이 그들을 짓누르지 않았을까. 물론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밀정이 되거나 독립운동을 포기한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요인들은 붙잡혔다는 사실에 먼저 분함을 느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이 앞섰고, 애타게 소식을 기대하고 있을 고국 동포들에게 미안함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거사를 이어받아 목숨을 걸어야 할 다른 동지들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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