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14편
더운 땡볕을 지켜보다보면 여행에 대한 마음은 저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시원한 집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죠:) 그러다 한번씩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와선 생각해요. 역시 돌아와서 맞이하는 시원함이 최고다! 이걸 포기하고 떠나는 여행이 찜찜한 요즘, 이럴땐 여행기책을 읽으면서 여행에 대한 열망을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박완서 소설가의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을 펼쳐봅니다.
한 작가에 대한 인상은 첫인상이 강렬할수록 고착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내게 박완서 작가는 오랫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가로 기억되었다.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어는 누가 먹었을까> 이 두 제목의 글이 내게 또렷이 기억돼있다. 전에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글을 교과서에 싣길 거부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누구든 다양한 면모가 있는데 한가지 면모로만 해석되는 게 강요와 억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글도 마찬가지겠지. 안타깝게도 내게 박완서 작가가 그랬던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왠지 중후한 느낌이라 산뜻한 기분으로 읽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나름의 편견을 가져왔다. 그래도 참 많은 글들을 남긴 분이라 자연스레 다가갔다가 야금야금 조금 읽고 놓기를 지속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주한 책,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은 왠지 내가 좋아하는 여행기책이라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박완서 작가의 글들에서 편협하지 않은 솔직한 시선들이 엮여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내몸의 눈치'를 본다는 말, '최고 권력자하고도 평등하되 누구한테도 겸손할 수 있는 자존심의 폭을 가질 수만 있다면' 같은 말들이 내 지금 나이에 와닿는 솔직한 표현이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웃음이 났다. 나도 이제 어릴땐 중후하게 느껴졌던 언어가 큰 격차없이 받아들여지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어서:)
박완서 작가가 유니셰프 친선대사로 다녀온 여정들이 많았다. 그중에 티베트여행글이 기억에 꽤 남는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에 대한 티베트 사람들의 생각이며 화려한 티베트 사원과 대비되는 티베트 사람들의 초인같은 모습에 속세와 종교가 뒤바뀐 것 같은 혼란을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을 따라가는 게 즐거웠다. 네팔 카트만두에 세계 만국의 온갖 자동차가 다니는 이유가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를 종착지로 젊은이들이 여행을 하고 이곳에서 자동차를 팔고 여비를 챙기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놀라며 읽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박완서 작가가 글에서 남긴 말처럼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노릇으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생기 회복의 여행이 어렵다면 여행기로 다만 여행자가 되보는 건 어떨까 싶다:) 잔잔하게 가끔씩 생각나는 솔직담백함이 박완서 작가의 매력이라는 생각, 나이들어 갈수록 중후함이 느껴지지 않을테니 앞으론 박완서 작가의 글을 자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