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13. 2023

’생긴대로 살든가, 절을 하든가‘

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는 29살 | 넷째 주 월, 화요일

#4월10일 월요일: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종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마음수련에 초점이 있는 이야기

주말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사실 108배를 시작해 보고자 마음먹은 것도 엄마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 아침에 절하는 것과 함께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에서 불교 경전반 수업도 듣고 계시다고 했다. 나도 아침에 절을 하고 나면 스트레칭을 하면서 석가모니 말씀이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는데, 종교적인 공부라기보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결국 세상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괴롭게 한다면 내가 그 괴로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혹은 괴로움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괴로움을 놓으면 되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괴로움을 움켜쥐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이 습관적이기 때문이다. 요 근래 내 마음도 괴로워서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기도문 하나를 알려주셨다.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사실 하루 절을 하며 기도문을 외운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을 때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아무리 기도문을 외워도 마음이 괴로웠다. 날아가고 싶은데 자꾸만 발이 땅에 묶인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자유로운 나를 생각했다. 절을 끝냈을 때 여전히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괴로워하나 괴로워하지 않으나 괴로움은 머물다가 갈 것이라는 것을. 아직 마음 수련이 잘 되지 않아서 어차피 지나갈 마음을 붙잡고 있다는 것도 안다. 꾸준히 마음 수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 붙잡지 않고 그저 지나가게 놓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절을 하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일을 했다. 괴로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괴롭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주말에 일요일만 쉬는데, 저번주에 고향집에 다녀오느라 주말 내내 쉬어서 오전, 오후에 걸쳐 두 배로 일해야 했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오늘은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둘이 마감을 하는 날이었는데, 매니저님이 퇴근하면서 아르바이트들에게 모카번과 쌍화탕을 주고 가셨다. 늘 챙김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고, 감사하다. 나는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만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조금 괴로웠다. 받고 싶은 마음 없이 주는 것이 최고지만, 아직 중생인 나는 이렇게 챙김을 받으면 감동을 받는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날씨가 춥진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해가 조금 길어져서 그런지 계속해서 손님이 많았다. 교대로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에 혼자 매장에 남았을 때 손님이 몰려왔다. 6잔을 시키는 손님 뒤에, 2잔을 시키는 손님, 1잔을 시키는 손님을 보내고 나면 설거지를 하다가 또 손님을 맞이하고, 또다시 맞이하고..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혼자 해낼 수 있게 되었음에 놀랐고, 감사했다. 모를 때마다 물어보라고 말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럼에도 조금씩 실수는 있었다. 캐리어에 음료를 담다가 음료가 기우뚱해서 음료가 새기도 하고, 간얼음으로 나가는 것이 기본인 음료를 각얼음으로 내보내기도 하고, 없는 메뉴를 주문받고 다시 환불해 주고. 살아도 살아도 인생은 늘 처음이 반복되는 것 같다. 죽는 날까지 이럴까? 그렇다면 의연해져야겠다.


8시부터 마감을 해야 하는데 끊임없이 손님이 와서 부랴부랴 마감을 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뭐랄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절을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게 뭘까 생각해 봤는데 현재에 집중해서 충실하는, 그래서 딴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느낌인 것 같다. 그래서 절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할 때도 있고, 몸은 지치지만 마음이 개운할 때도 있다. 우울하거나 생각이 많을 때 몸을 움직이라는 말이 이 때문이었나 보다. 오늘은 몸은 조금 지치지만 마음만은 개운한 상태로 퇴근했다. 적절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한 것이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




#4월11일 화요일: ’어색할 땐 MBTI 이야기‘

오늘도 일어나서 108배를 했다. 오늘의 기도문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나는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나의 문제는 집착이다. 가령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루틴 한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에 집착하고 루틴대로 생활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받아하기도 하고,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집착하고, 내 가치관에 집착한다. 그래서 기도문을 외우며 나는 그 어떤 기준이나 유형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말했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꾸만 고정되어 있으려니 괴롭다. 고정된 것을 기준으로 자꾸 판단하려고 하니까 괴롭다. 놓아버리자.

절을 하고, 아침밥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었다. 뉴스에서 봤듯이 아침부터 엄청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닫힌 창을 통해서도 들리고, 비가 내리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날이 꾸리꾸리해서 마음이 조금 다운됐을 텐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오늘은 손님이 좀 적겠군. 아주 좋아.’하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니 어떤 일이든 좋은 점을 볼지, 나쁜 점을 볼지 선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최대한 좋은 쪽을 많이, 자주 봐야겠다.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두릅을 손질해서 데쳤다. 그리고 지인이 판매하는 새우장이 도착해서, 두릅과 새우장으로 저녁 도시락을 쌌다. 지난 주말에 고향집에 가서 텃밭에 있는 쪽파, 부추 등을 뽑아 다듬으며 ‘이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먹을 것을 기르고, 손질해서, 끼니를 챙겨 먹고, 나의 일을 하는 삶. 누차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점점 머리만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몸을 쓰는 일이 줄어들고, 몸을 쓰는 일을 경시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귀촌한다는 이야기를 꽤 자주 들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도시, 그것도 서울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챙기기가 참 힘들다.


오늘은 또 다른 매니저님과 처음 함께 일하는 날이었다. 내 근무 시간이 시작되는 6시에 매니저님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나는 손님도 맞이하고 미리 해놓을 수 있는 마감업무도 이것저것 해놓고, 물류도 와서 정리했다. 그리고 6시 59분에 매니저님이 돌아왔고, 나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7시 45분까지 쉬다가 오라고 했다. 이런 횡재가! 언제나 그렇듯 매장 창고 한편에서 도시락을 먹고, 시간이 남아 편의점에 가서 오랜만에 쌍쌍바를 사 먹었다. 언제부턴가 콘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는데, 오늘은 어렸을 때 먹던 맛이 당기는 날이었다. 그런 향수도 있었고, 사실 이제 밥 먹고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너무 배부르다.. 양이 너무 많다. 감사하게도 쌍쌍바가 아주 작아져서 양이 딱 좋았다ㅋㅋㅋ 그런데 1,500원 실화냐… 옛날에는 500원 주고 사 먹었던 것 같은데. 미친 물가다.


다시 근무에 복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했다. 매니저님이 나보다 5살이나 어린데 말을 잘 받아줘서 놀랐다. 내가 어린 건지, 매니저님이 어른스러운 건지, 둘 다 같기도 했다. 어색한 사이에 상대를 파악하는 데에 MBTI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은근슬쩍 MBTI를 하나씩 물어봤다. 본인의 MBTI 이야기는 연인의 MBTI까지 나아갔는데 문득 이야기를 하고,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도 만나봤고, 나와 성향이 반대인 사람도 만나봤는데 결국 늘 문제는 발생했다. 그 이야기는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아니고, 성향이 다르다고 서로 온전히 보완해 주는 관계이기도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흔히 MBTI로 본인을 정의할 때 예를 들어 ‘나는 외향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며 계획적인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외향성이 100프로, 풍부한 상상력이 100프로, 감정적인 면이 100프로, 계획적인 성향이 100 프로이진 않지 않은가. 외향적이면서도 내향성도 가지고 있고, 상상을 하면서도 현실에 발 붙이고 있고, 감정이 풍부하지만 이성적이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이성을 사용하기도 하고, 계획적이지만 가끔은 충동적이고 싶은 게 사람이지 않을까. 한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 무엇으로 간단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떤 기준으로 딱 잘라 판단하고 구분 짓는 생각과 행동을 조심해야 겠다‘고. 그래서 오늘 처음 함께 일한 매니저님은 외향적이지만 어쩐지 내향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아 보였고, 없는 일을 ‘만약에~’라는 식으로 물어보지만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고, MBTI 검사를 하면 이성이 거의 90프로가 나오지만 내 이야기를 잘 공감해 줬고, P가 나오지만 일하는 데에 있어서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힘드니 108배를 해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