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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r 10. 2024

명품백은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지난번 그 백 왜 안들고 다녀요?

이쁘던데...나도 돈 모아서 사야지.


무슨 백...이요? 아하...지난번 그...?!


지난 번 내가 들고 온 짝퉁 명품백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회사에 나의 백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굳이 짝퉁이라고 커밍아웃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동료를 보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나이쯤 되니, 짝퉁을 들고 다녀도 설마...하며 진짜라고 생각해주나보다.




신입사원 시절, ‘저축’에 대한 개념이 없던 나는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약간의 용돈을 드린 후, 남은 돈을 다 써버리곤 했다.


이번 달엔 설화수 화장품 풀세트, 담달에는 고가의 정장세트 12개월 할부 결제, 당시 유행하던 값비싼 큐빅 머리핀도 참 많이도 샀다. 명품 가방은 알지도 못하면서 동료들이 많이 사는 브랜드를 따라사곤 했다. 펜디, 구찌, 셀린느…


신입사원 초봉으로도 살 수 있는 스몰 럭셔리는 항상 있었고, 카드 할부를 이용하면 소득을 넘어서는 명품도 쉽게 살 수 있었다.


회사 동기 중에는 매일 비슷한 느낌의 눈에 띄지 않는 정장을 돌려입으며 일만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의아해했다.


도대체 월급받아 뭐하느라고 옷 한 벌 안사입을까?




그러다가 점차 명품, 사치품에 흥미를 잃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의 사회적 신분 변화'였다. 경솔하게 첫번째 직장을 그만둔 이후 경단녀로 지내다가 계약직으로 재취업을 하게 것이다.


https://brunch.co.kr/@allthatmoney/17


주목받는 공채 신입사원에서, 한순간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지원 인력이 된 기분이란…어쨌든 그 이후 나는 회사에 비싼 명품 가방과 고급 정장을 입고 다닐 의욕을 잃었다.


아무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고 별 중요한 위치도 아닌데 굳이 차려입고 다닐 필요가 있나? 뭔가 나의 정성과 노고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도 회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셈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또 있어 보이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 알랭드보통 <불안>



어쨌든 계약직인 나는 매일 비슷한 느낌의 눈에 띄지 않는 정장을 돌려입으며 일만 열심히 한 결과,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명품백은 여전히 들고 다니지 않는다. 회사에서 잘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여전히 회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번 돈인데...

명품가방을 사느라고 다 써버리느냔 말이다.


...내가 사고 싶은 건 명품가방이 아니라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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