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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r 31. 2024

후배가 강남 신축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직장에 다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월급연금이다.


비록 잠시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아니었으면 매일 지옥철 안에서 사람들에 찡겨 숨막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출퇴근하는 일을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때로는 월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쉬고 싶다는 충동도 들지만 말이다.


회사 다니기가 정말 싫어질 때면 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는데, 다름아닌 연금과 퇴직금 확인이다. 조금씩 쌓여가는 연금과 퇴직금을 보면서, 다시 한번 속아주곤 한다. 이 퍽퍽한 삶에...



올해 들어 연봉총액이 월 ㅇ십만원 가량 올랐는데, 월급 실수령액은 막상 그 절반밖에 안올랐다.


뭔가 봤더니 소득세가 올라 나머지 절반을 깎아먹는 것이다. 아마도 연봉 상승으로 소득세 구간이 바뀌면서 세금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물가상승으로 월급 올라봐야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세금을 이렇게 왕창 떼어가다니. 직장인 봉급은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지금처럼 월급과 연금만을 바라보며 직장 다니는 것이 맞는 일일까?




2주택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장 큰 과제는 역시 폭락론자 남편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남편은 곧 닥칠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집값 하락을 굳게 믿고 있다.


그동안 남편은 날이 춥다는 이유로 임장을 거부해왔다. 이제 날도 풀렸겠다, 본격적으로 임장을 가보자고 설득했다.


여보,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

여보는 월 ㅇ백만원 벌려고 회사 다니는 거야?

그 돈 벌려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시달려가면서 회사 다니는 것 맞냐고..


어느 블로그 글에서 읽었는데, 단지 월 ㅇ백만원 벌기 위해 회사 다니는 건 아니래.

직장은 월급이 아니라 '신용'을 위해 다니는 거라고.

직장 다닐 때 ‘신용'을 이용해서 살 수 있는 최고의 부동산을 사고, 월급으로는 그 이자를 내는 거래. 이 말 진짜 충격적이지 않아?


남편은 내 말을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동요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남편이 군말없이 나를 따라 임장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회사 후배의 강남 신축아파트 이사”였다.


그 후배는 아이를 SKY 인기학과에 보내 사내에서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는데, 그에 더해 이번에는 강남 신축아파트를 사서 이사간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한참 입지가 낮은 아파트에 살던 후배였다.


그런데 자산 급등 직전에 영끌로 학군지 대형평수를 사서 들어와 자산을 불리더니, 이제는 아이 교육 다 마치고 강남으로 입성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후배의 약진에 자극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친구…보통 야무진 게 아니야.

여보, 우리도 남쪽으로 임장 좀 가볼까?


나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더 효과적인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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