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민정 Nov 17. 2021

그래도, 그래도.

행복하다와 불안하다를 붙여 말하는 나라도.

 무기력은 때를 맞춰오지 않는다. 금요일까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을 쓸 때 가장 효율이 좋았던 카페를 갔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정신을 빼놓고 가져가지 않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기러 다시 집에 왔다. 며칠 전부턴 어딜 가든 다른 사람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크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온통 신경이 다른 쪽으로 쏠려있는 내 탓이 더 크다. '오늘은 여기까진 완성해야지', '아.. 오늘은 못했으니 내일은 꼭 해야지'라는 생각도 유효기간이 넘었다.


 아침만 해도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여자배구를 봤다. 요즘 가장 빠져있는 여자배구.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좋다. 감히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던 경기도 보란 듯이 해낸다. 그 뒤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바쳐주고 있는지 쉽게 짐작하기도 힘들다. 요즘엔 자주 그들의 태도를 내 삶에 가져오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도 선수들처럼 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면 좋겠다'하면서도 계속해서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린다. '세계적인 선수도 저렇게 열심히 한 경기 한 경기 매달리는데, 나는 뭐라고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지나칠까'라는 괴로움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 찾아오면 불안도 같이 묻어온다. 마치 새로운 셔츠를 사서 행복해하다가 생각지 못하게 허리춤에 묻은 얼룩이 발견된 기분이다. 발견하기 힘든 곳에 있으나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아무리 셔츠의 많은 면적이 멀끔해도 그 얼룩이 발견되는 순간 그 얼룩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늘 갑작스러운 행복이 찾아올 땐 새 셔츠를 선물 받은 것처럼 기뻤지만, 한편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저 구석의 허리춤에 불안이 묻어서 오지 않았는지 찾는데 신경이 쏠리곤 했다. 행복이 불안과 같이 오는 건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성격 탓일까. 아마 성격 탓인 게 더 맞는 것 같다. 친구들과 포항에 놀러 갔을 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호미곶을 가던 차 안에서 친구에게 행복하다고 말했던 날도 행복하다와 불안하다를 붙여 말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행복하면 행복한 거야.

불안은 집어치워. 지금 행복하면 되는 거야. 

불안은 그때 생각하면 되는 거야. 

행복할 때 행복해 두는 거야.


그렇게 행복하다와 불안하다를 떼놓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얼룩 없이 행복한 날도 많았다. 완벽히 떼놓았다고 생각했던 그 단어가 조용히 붙여진지도 모른다. 걷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 밖으로 나간다. 저녁을 먹고 바로 눈을 붙인 탓에 속이 메스껍다. 덜 치워져 있는 설거지 거리를 처리하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서 요즘 자주 듣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다른 사람의 사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또 생각이 많아진다. 종아리가 뻐근할 정도로 걸으니 회사를 다녔을 때가 생각난다. '회사에 다녔을 땐, 저녁이 어땠더라. 뭔가 해냈다는 마음으로 홀가분한 적이 있었나?'라고 스스로 질문해본다. 


 아니. 절대 아니야. 분명 8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했을 텐데 지금보다 '하지 않았다'는 감정이 자주 들었다. 어느 날은 너무나 소진된 나머지 혼자 있는 저녁시간에도 나를 찾지 못해 괴로웠던 적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퇴근할 때까지 나는 아무렇게나 놓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주 괴로웠다. 출근과 퇴근이 나를 해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마음인걸 다시 깨닫는다. 출퇴근과 해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 그건 내가 삶의 중심을 잡아야지만 가능한 걸. 다시 한번 마음을 그렇게 가다듬는다.


 내일도 어쩌면 이 무기력이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없었던 것처럼 하루 만에 말끔히 사라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 효율이 좋은 동네 카페를 갈지도 모르겠고, 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보면서 앉아있을 수 도 있겠고, 또 하염없이 책에서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밥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제 때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밤에는 산책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무언가를 하려고 앉아있어야지. 그래도. 그래도.

이전 07화 내 집에서 혼자서 완전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