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기다려주는 요가로 다시
요가를 처음 접한 건 21살 때쯤이었다.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보곤 운동이라도 하라며 엄마가 쥐어준 10만 원으로 요가를 등록했다. 헬스장도 다녀본 적 있었지만 결국 3개월 이상 다닌 적이 없었다. 헬스장을 다닐 때부터 맞은편에 있는 강미정 요가라는 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일들은 대단한 자부심 없이는 못한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다. 널찍하게 펼쳐진 요가원에 들어서니 작은방 한 칸에서 문을 열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걸어 나왔다. 키는 작지만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끝내 선생님이 강미정 선생님인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선생님은 한 분뿐이셨으니 강미정 그분이 강미정 선생님이셨을 거다.) 다음날부터 패기롭게 새벽 6시 30분 요가 수업에 출석했다.
새벽 수업이라 그런지 또래 친구들은 없고, 중년 여성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어려운 동작들을 하려고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그렇게 요가 수업을 나가니 이상하게도 무기력이 조금씩 걷혔다. 추운 아침에도 새벽에 잠을 깨워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요가를 꾸준히 나갔다. 매번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딸이 새벽에 요가 수업을 가는 모습을 보곤 엄마도 다소 놀란 눈치였다. 요가는 정적인 운동이라고, 어렵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내 오만한 생각은 정말 쉽게 깨졌다. 어느 날은 벽에 매달린 끈에 다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를. 어느 날은 한 발을 다른 허벅지에 붙이고 체감상 5분 이상을 버텼고, 어느 날은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려 90도, 60도, 45도, 30도를 오가며 계속 복부와 다리에 엄청난 긴장감을 주는 자세를 반복했다.
요가원은 도란도란한 분위기가 강했다. 6개월 이상 요가를 수련한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새벽반만의 정통인지 몰라도 1년이 되면 1년 기념 떡을 돌렸다. 아침에 갓 따끈하게 쪄낸 떡들을 요가원을 다니면서 20개쯤은 얻어먹었다. 하얀 속살이 꽉 들어차 밀도가 높은 백설기, 콩과 밤과 건강한 것들이 가득 찬 영양 떡까지. 매번 숫기 없는 모습으로 삐죽삐죽 요가 수련을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 선생님은 나를 슬쩍 불러 따끈한 보이차를 내어주고, 따끈한 떡을 손에 쥐어주셨다. 1년쯤 요가를 다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요가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강미정 요가 간판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무기력을 물리쳐준 대단한 곳. 매번 따뜻한 차와 떡이 있었던 곳. 다정한 곳. 나는 그렇게 요가를 사랑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1년은 못 다녔나 보다. 나는 1년 기념 떡을 못 돌렸다.. 얻어만 먹고 돌리지 않고 그만둔 배은망덕 요가 수련생)
불어난 살들, 뻐근할 대로 뻐근한 어깨와 목.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어떤 운동이든 골라잡아해야 했다. 종종 달리기를 하러 나갔지만, 꾸준히 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근 1년간은 열지 않던 스포츠센터가 다시 연다는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스포츠센터에도 새벽 요가가 있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7시 새벽 요가를 등록하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갔다. 가볍게 시작하는 목 돌리기부터 다양한 동작을 하니 좋았다. 선생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일주일간 수업을 들으면서 그 의심은 걷혔다.
단호하고 강단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좋았다. 매번 동작을 할 때마다 '우리는 대부분 앞을 보면서 생활하죠. 그래서 이렇게 뒤쪽으로 향하는 동작도 해줘야 해요'라고 설명해 주는 말도 좋았다. 어느 날은 매트 위에 서서 눈을 감고 제자리걸음을 했는데, 눈을 떴을 때 이리저리 사람마다 치우쳐져 있는 위치가 다른 모양을 보곤, 사람마다 어느 쪽이 더 틀어져서 그쪽으로 쏠리기도 한다는 말을 해주시기도 했다. 새벽마다 선생님의 강단 있는 목소리를 들으며 수련을 할 때면 그날을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쩔 때는 남들보다 현저히 못하는 동작을 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 '잘되지 않는다는 건 잘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조차도 놀랐다. 또다시 요가를 사랑하게 됐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도 10명도 안 되는 새벽 요가의 수강생이 점점 늘어나더니 30명쯤 됐을 때 사람이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나는 더 이상 스포츠센터는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선생님 덕분에 저는 요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퇴사하게 됐을 때, 고민도 없이 요가를 찾았다. 8명 이내의 소수로 수련하는 요가원이었다. 10분 정도 빨리 요가원에 도착해서 선생님과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
- 요가는 이전에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 네. 어릴 때 한번 1년 정도 했고, 이전에 6개월 정도? 근데 어려운 동작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 첫날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돼요.
어느 정도의 수업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나는 어려운 동작을 못하는 사람이에요 하는 지레 겁먹은 말을 먼저 했다.
다행히 첫 수업은 무리 없이 대부분의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었다. 다음날은 엉덩이부터 어깨까지 성한 곳이 없었지만.. 걱정들이 떠다니가도 요가 동작들을 할 때면 동작을 하고 있는 그 몇 초에 집중하게 됐다. 60분의 수련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이래서 나는 요가를 사랑한다.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의 고통만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할 수 있어서. 조용히 기다려주는 운동이라서. 나는 다시 요가에 매료됐다. 아니 나는 요가를 하지 않았던 그때도 꾸준히 요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요가를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요가를 사랑하는 조금은 특이한 점을 하나 소개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낯을 심하게 가린다. 요가 얘기를 하다가 왜 낯 가리는 이야기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이 대단한 일에서 그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처음 다녔던 요가원도 스포츠센터도, 지금 다니는 요가원도 나는 같이 수련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와 다른 개인적인 것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도 나에게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묻지 않는다. 동작을 할 때 아픈 곳이 있는지, 요즘 수련은 어떤지 정도가 질문의 전부다. 몸을 늘리고 웅크리고, 버티고 힘을 빼는 그런 것들에만 고요히 집중하는 요가만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개인적이지만 다정한 분위기는 요가만이 가지는 특별한 점이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고 불필요한 잡음이 없는 운동을 찾고 있는 분들이 요가를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무서운 말처럼. 요가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돌아 돌아 다시 요가로 돌아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