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Oct 25. 2020

엄마라는 고통, 행복 그리고 지루함

달콤한 노래 by 레일라 슬리마니

엄마라는 생활이 주는 고통과 행복,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지루함


원래 어두운 책은 잘 안 읽는다. 미스터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이가 죽는 내용의 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듣고, 뭔가에 홀린 듯 책을 들었다. 어두운 책, 아이가 죽는 내용의 책을. 소설의 첫문장에서부터 아이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대놓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어여쁜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을지, 왜 죽었는지,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돌아선 미리암. 그녀는 딸 밀라와 아들 아담을 돌보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 공부를 마친 게 아깝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직장을 잡고 싶어 한다. 그가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치자 남편이 말한다.



"You're going to work? Well, that's fine, but what are we going to do about the children?"
"일할 거라고? 그거 잘됐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



맞벌이 부부의 육아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고민 끝에 이 부부는 아이들을 봐줄 보모를 구한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봐주는 보모도 구했고, 남편도, 아내도 각자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엄마인 미리암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전업주부로 있을 때도, 아이들을 보모에게 맡기고 일을 할 때도. 그리고 그녀의 불안한 예감은 점점 거세지면서, 이야기는 아이들의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출처: 교보문고



영국의 <텔레그레프>지에는 이 책의 서평에 이런 글이 실렸다.


이 책을 처음 몇 단락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저자가 엄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다. ... '엄마'라는 생활이 주는 고통과 행복, 깊이를 알 수 없는 지루함이 완벽히 섞여 있는 그 생활을 몸소 체험해본 사람이라는 걸.


고통과 지루함. 지나치다 싶게 모성을 찬양하고 떠받드는 우리나라의 정서로 보자면 사뭇 낯선 표현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와닿는다. 이 책의 내용이.

원서의 제목은 "The perfect nanny"이다. 완벽한 보모.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되기도 힘든데, 과연 완벽한 보모가 있을까? 그 완벽한 보모는 뭘 한 걸까?


영어원서 표지. 출처: 교보문고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든 생각.


읽기도 힘든 책을 쓰다니, 쓰면서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고민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

왜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

'엄마'의 역할이 찬양받는 시대에 '엄마'가 되는 괴로움을 노래한 용감한 책.

보육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라 해도 이런 고민은 여전한가 보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라.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줄



1.

She didn’t realize the magnitude of the task she had taken on. With two children, everything became more complicated: shopping, bath time, housework, visits to the doctor. The bills piled up. Myriam became gloomy. She began to hate going to the park. The winter days seemed endless. Mila’s tantrums drove her mad, Adam’s first burblings left her indifferent. With each passing day, she felt more and more desperate to go out for a walk on her own. Sometimes she wanted to scream like a lunatic in the street. They’re eating me alive, she would think. She was jealous of her husband. In the evenings, she stood by the door in a frenzy of anticipation, waiting for him to come home. Then she would complain for an hour about the children’s screaming, the size of the apartment, her lack of free time. When she let him talk and he told her about epic recording sessions with a hip-hop group, she would spit: “You’re lucky.” He would reply: “No, you’re the lucky one. I would love to see them grow up.” No one ever won when they played that game. (p. 18).  

그녀는 자신이 떠맡은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 아이가 둘이 되니까 모든 일이 더 복잡해졌다. 장을 보고, 목욕을 시키고, 집안일을 하고, 병원에 검진을 가고. 청구서는 쌓여갔다. 미리암은 우울해졌다. 그녀는 공원에 가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밀라가 떼를 쓰면 미칠 것 같았고, 아담의 옹알이에도 무감각해졌다. 하루하루 지날 수록 그녀는 점점더 절박하게 혼자서만 산책을 나가고 싶었다. 가끔은 길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고 싶었다. 애들 때문에 피가 말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이 부러웠다. 저녁이면 그녀는 문가에 서서 남편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안절부절 못하며 고대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동안 아이들이 소리지른 일이며, 아파트가 작은 것이며, 그녀에게 자유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등등에 대해 투덜거리곤 했다. 그가 자신이 힙합 그룹과 레코딩 세션을 계약한 것에 대해 자랑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운도 좋아." 그는 대답하곤 했다. "아니, 당신이 행운인 거지. 나도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보고 싶어." 서로가 운이 좋다고 추켜세울 때면 아무도 승자가 없었다.


전업주부들이 늘 듣는 말.

집에서 애 키우면 좋겠다. 애들 정서에 좋지. 애들 잘 봐줄 수 있으니까. 이 시간은 지나면 다시 안 오잖아.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이야. 행복하겠다. 좋겠다.


모두들 그녀에게 "You're lucky"라고 한다.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고.


2.

For months she pretended she was okay. Even to Paul, she didn’t dare admit her secret shame. How she felt as if she were dying because she had nothing to talk about but the antics of her children and the conversations of strangers overheard in the supermarket. She started turning down dinner invitations, ignoring calls from her friends. She was especially wary of women, who could be so cruel. She wanted to strangle the ones who pretended to admire or, worse, envy her. She couldn’t bear listening to them anymore, complaining about their jobs, about not seeing their children enough. More than anything, she feared strangers. The ones who innocently asked what she did for a living and who looked away when she said she was a stay-at-home mother. (p. 19). 

몇달 동안은 괜찮은 척 했다. 심지어 남편에게조차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이들의 장난이나 슈퍼마켓에서 남들 얘기를 우연히 엿들은 것 말고는 자신에게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죽을 것 같은지. 그녀는 저녁 식사 초대를 거절하고, 친구들 전화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특히 여자들을 조심했다. 그녀들은 잔인해지기도 하니까. 그녀는 자신을 추켜세우는 척하는 아니, 더 심하게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척하는 여자들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녀들이 자기 직장생활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아이들 볼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불만을 얘기하는 걸 더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낯선 이들이 두려웠다. 너무도 순수하게 그녀의 직업을 묻고는, 그녀가 전업주부라고 답하는 소리를 듣고는 어색해지는 사람들.


3.

"You're going to work? Well, that's fine, but what are we going to do about the children?" (p. 24) 

"일할 거라고? 그거 잘됐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


4.

You know what two words parents say most often to their children these days? ‘Hurry up!’ And of course, we pay the price for all this. (p. 49).  

요새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서둘러!"야. 물론, 그것 때문에 우린 큰 값을 치르고 있지만.




제목: 달콤한 노래

원서 제목: The Perfect Nanny
저자: 레일라 슬리마니 (Leila Slimani)

옮긴이: 방미경

출판사: 아르테(arte)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아르테 출판사 것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게 되자, 본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