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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Jul 17. 2021

자폐인이 직접 들려주는 자폐 이야기

자폐인 것처럼 안 보이는데? by 마이클 맥크리어리

저자가 자폐라고?


이 책을 고른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어떤 책을 읽을까 도서관 홈페이지의 화면을 넘기고 있었는데, 파란 바탕에 노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너 자폐인 것처럼 안 보이는데? Funny, you don't look autistic.


자폐는 일명 '스펙트럼'이라 불리는 장애다. 자폐의 양상과 증상이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굉장히 다양하다는 뜻이다. 그 한쪽 끝에는 일반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눈에 띄는 증상도 없고, 오히려 기억력이나 집중력 등 일부 능력은 평균치를 뛰어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 드라마 <굿 닥터>의 주인공이 그 예다.


하지만 반대쪽 끝에는 자기 세계에만 갇혀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바깥세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능이 낮거나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생활을 못하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이 양 극의 사이에는 수많은 증상과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앓고 있는 자폐인들이 있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 책의 저자가 자폐 증상이 경미한 고기능 자폐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폐아에 대한 의료인의 글이 아니라, 자폐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아, 얼마 전 재미있게 본 드라마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무브 투 헤븐>에서도 탁준상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이 고기능 자폐(아스퍼거 증후군)였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던 것도 있고.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됐을 때까지, 자폐인으로서 겪고 깨달은 바를 적은 에세이 혹은 자서전쯤 된다. 처음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좌충우돌 혼란스러웠던 학창 시절. 그리고 '코미디언'이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까지.

그런데, 가만. 코미디언이라고?



자폐인데 코미디언이라고?


자폐인이 직접 책을 썼다는 것과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것이었다. 자폐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힘들고, 남들과의 소통에 장애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코미디언이라니.


어쩌겠는가. 그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자신의 말에 웃는 걸 보면 심장이 뛰었다.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웠지만, 자신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래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로 했다.


캐나다 사람인 그는 현재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그의 활동에는 제약이 있다. 주류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아직은 자폐 관련 행사나 세미나에 주로 초대받아 무대에 선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법.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날이 오지 않을까?



출처: Goodreads   

영어 원서 표지. 책의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겐 필수인 마이크를 코믹하게 들어 보이고 있다. 눈에 띄는 제목과 더불어 표지도 엄지 척해주고 싶다.



특이하고 독특한 책


자폐아에 대한 책은 종종 봐왔다. 대개 의료인들이나 심리학자 등이 진단과 앞으로의 예후 등에 관해 서술한 책들이다. 당연히 그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대상은 대부분 '자폐아', 그러니까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도 결국은 다 자랄 텐데, 성인 자폐인에 대한 책이나 정보는 극히 드물다. 그런 점에서 성인 자폐인이 자신에 대해 직접 쓴 이 책은 매우 특이하고 독특하다.


거기에다 재미도 있다. 직업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 그런지, 책에서도 그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예전에 자폐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템플 그랜딘 박사의 책이다. (<템플 그랜딘>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 역시 고기능 자폐를 앓고 있는데, 동물학자로 콜로라도 주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이 어려운 공부까지 마치고, 대학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자폐인이 쓴 책이 이렇게 위트가 넘치고 재기발랄하다는 점에서 참 기분좋게 놀랐다.


물론 책의 단점도 있다. 책을 출간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20대 중반.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기엔 자서전으로 보건, 에세이로 보건, 글이나 삶의 깊이가 좀 얕을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자폐인이 직접 쓴 글이라는 독특한 지점. 그리고,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글의 재미는 이 책의 장점이다.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아직 우리말로 번역이 되진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번역서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저자는 자폐이기 때문에 감정을 읽는 데 서투르고,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남들은 눈치로 다 알 수 있는 것들을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 그래서, 어찌 보면 뻔한 것일 수도 있는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부모님에게서 다 배우게 된다. 소위 '남들처럼' 보이게, '보통 사람처럼' 보이게.

그런데...


I was taught how to “act normal.” I learned to hold the door for people. I learned to tell the truth, but to understand when it was okay to lie for politeness. I learned to use my manners, not to swear, to respect personal space, and to stop talking when it was time for somebody else to have a turn.

And then I got to school. And I discovered that no one else had learned these things.

...

And I felt cheated. Why did I have to learn how to be polite and respectful when other kids didn’t? (p. 26).


나는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라고 배웠다. 늘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때로는 거짓말을 하는 게 예의 바른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했다. 난 예절을 배웠고, 욕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바싹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는 내가 말을 멈춰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다른 아이들은 이런 것을 하나도 안 배우고 학교에 왔다는 걸 알게 됐다.

...

속은 기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마구 행동하는데, 왜 나만 예의 바르고 얌전하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2.

You either have autism or you don’t, and while saying things like “Oh, I hate loud noises, too” might be meant to make people feel included, it also potentially trivializes a person’s daily struggles.

There’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having autistic tendencies and actually having autism. (p. 27)

당신은 자폐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나도 큰 소음 싫어해요."같은 말을 하면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누군가가 매일 겪는 고난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릴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자폐적 성향이 있는 것'과 실제로 그 사람이 '자폐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3.

자폐인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낄까. 궁금해한 적이 있는지?


Having autism is like having too many tabs open on a computer. Or more accurately, it’s like trying to surf the web without an ad blocker. Every time you click on something, another window pops up. (p. 30)

자폐인 사람은 마치 창이 많이 떠있는 컴퓨터 화면 같다. 아니, 더 정확히는 광고 차단기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과 같다. 뭔가 하나를 클릭할 때마다 또 다른 창이 뜨곤 한다.



4.

In a given group of, say, seven people, five out of the seven will like me. The only people who don’t are this one person, and myself. (p. 85)

만일 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한다면, 그중 다섯 명은 날 좋아할 거다.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머지 다른 한 명과 나 자신뿐이다.



5.

I’ve gotten better over the years at dealing with my fear that people will hate me, and one thing that helps is the knowledge that a certain percentage of the people you encounter are always going to hate you, and for no particular reason. (pp. 88-89)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라는 두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아는 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건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항상, 이유가 뭐가 됐건 간에,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꼭 있을 거라는 거다.



6.

I finally realized that the people who matter are the ones who make time for you. Friendship is deeper than having mutual interests. Friendship is setting aside time in your day to help someone forget about life for a while. (p. 100)

나는 마침내 내게 중요한 사람들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정은 단지 서로 취향이 같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우정은 내 시간을 따로 내어서 다른 이가 자신의 복잡한 삶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7.

어떤 행사에 갔다가 영국 소설가인 닐 가이먼을 만난 저자 마이클. 그때 닐 가이먼이 해줬던 조언을 적고 있다.


Neil Gaiman once said: “You have to be on time, easy to work with, and good at what you do. If you are two out of three of these, you’ll be fine.” (p. 139)

닐 가이먼은 이렇게 말했다. "항상 시간을 지키세요. 함께 일할 때 너무 까다롭지 않은 게 좋고,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해야 해요.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앞으로도 괜찮을 거예요."



8.

글을 쓴 저자도 자폐지만, 그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고기능 자폐다. 그의 남동생은 더 심한 자폐를 앓고 있다. 지능도 낮고, 말도 잘 못한다.

집에서 저자와 아빠가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종종 남동생은 비디오 테이프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 걸 방해받으니, 저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때마다 무척이나 짜증을 내고 화를 냈었다.

그런데, 자폐와 관련된 세미나를 갔다가 강사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저자.


“People want a connection on their own terms. If you can replace that task with something you both enjoy, maybe you could find a better connection.”

My brain imploded. All of those times my brother wanted me to swap out a tape was just him trying to be a part of my life? I’m such an idiot!

...

Any time my dad and I got to talking too much and he felt left out, he’d tap on my shoulder to get me to change the channel. It felt far more endearing now. (p. 155-156)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과 소통하고 싶어 해요. 지금 (둘이 함께 하는) 그 일을 양측이 서로 즐길 수 있는 걸로 대체할 수 있다면 서로가 좀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거예요."

내 두뇌가 폭발하는 거 같았다. 내 동생이 테이프를 바꾸려고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이 사실은 동생이 나와 소통하고 싶었던 거라고? 난 정말 바보였구나!

...

아빠랑 내가 얘기를 너무 많이 하거나 자기가 혼자 소외됐다고 느낄 때면, 동생은 TV 채널을 바꾸자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는 그 행동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동생이 테이프를 바꾸려고 하거나 TV 채널을 바꾸려고 하는 건 그만의 방식으로 형과 소통을 하려던 거였다. 그는 형과 아빠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으니까.  





번역서 제목: (내가 아는 한 아직 번역서 없음)

원서 제목: Funny, You don't look autistic

저자: 마이클 맥크리어리 (Michael McCreary)

특징: 저자가 고기능 자폐를 앓고 있음.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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