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일 하나에도 기뻐하는 사람이다. 불만을 가지기보다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좀 과도하게 낙천적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니까 겁도 없이 이 나이에 웹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뛰어들었겠지.
내가 웹소설 작가가 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 목적은 '웹소설 작가가 되기'였지 '웹소설 작가가 됐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기'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아주 숨길 수는 없었기에 친한 친구 두어 명 정도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내게 물었다. "벌이는 좋아?"
나는 벌이가 얼마 안 된다고 털어놨다. 이제 겨우 데뷔한 신인 작가가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내가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인기 탤런트는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수억이지만, 무명 탤런트는 연기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이 얘기를 친구에게 설명하다 보니 내 기분이 점점 달달해졌다. 엿 같아졌다는 뜻이다.
달디 달고 달디 단 엿 같은 기분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왜 기분이 나빠졌을까?
물론 누가 대놓고 월급이나 연봉을 물어보면 기분이 나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는 충분히 조심스럽게 물어봤고, 그런 얘길 스스럼없이 할 만큼 친하기도 하다. 그러니 단지 저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건 아니었다.
그럼 왜 기분이 나빠졌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불현듯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질문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게 아니라, 내 대답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을.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변명하고 있었다. 나는 돈을 잘 못 버는데, 그 이유는 내가 '성공한 작가가 아니고 아무도 몰라주는 무명작가라서'라고. 분명 이전까지는 웹소설 작가가 됐다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친구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것은 별것 아닌 사소하고 시시한 일이 된 느낌이었다. 내 기쁨을 내가 망쳐 버린 거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일찍이 공연 예술의 달인 싸이 박재상 선생이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라 했으니, 얼마를 벌든 즐기면서 소설을 쓰는 나는 이미 성공한 거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나와 같지 않을 터였다.
도대체 성공은 뭐고 실패는 뭘까? 웹소설을 써서 억대 연봉을 벌어야만 성공하는 건가? 돈도 못 버는 무명작가는 실패한 작가인가? 애초에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뭐지? 누가 그걸 정하는 거지?
웹소설 작가로 데뷔는 했으니 누군가는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할 거다. 데뷔하는 데 3년이나 걸렸고, 누구나 알 만한 대박 작가가 아니니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웹소설 작가가 됐다는 주제를 가지고 브런치북을 쓰고 있으니 독자들의 시선도 더더욱 집요해질 거다. 그래서, 넌 얼마나 성공했느냐고. 웹소설 작가로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줄 건지 실패한 내용을 알려줄 건지 궁금해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내딛으며 도전하는 거지
마침표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나는 성공한 작가인가 실패한 작가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즐겁게 글을 쓰고 있는 한 나는 성공한 작가다. 하지만 내 기준이 아닌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아직 단정을 내리긴 이르다. 나는 이제 겨우 출발선을 벗어난 셈이니까. 마흔일곱이라는 나이와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직도 계속 도전 중이고 노력 중이니까. 그러니스스로 성공하지 못한 작가라고 변명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내 인생 아직 안 끝났어. 난 계속 쓸 거야.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 즐겁게 써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세속적인 기준에서도) 성공한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인기 작가도 되고, 열성 팬도 생기고. 비록 그게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런고로, 이 브런치북은 성공기도 실패담도 아니다. 내가 계속 도전하는 이야기다.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그걸 담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