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May 02. 2024

새로운 세상은 낯설고 신선했다

나만 모르던 세계

만화책 같은 표지와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듯 유치한 제목에 지레 겁먹고 백스텝을 밟으려 했다. 가뜩이나 핸드폰에 깔아놓은 게 많아서 자꾸 느려지기에 새로 다운로드한 웹소설 '문피아' 앱도 지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싶었다. 겉모습만 보고 문워킹으로 물러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일단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내용물은 살펴봐야지.


투데이 베스트 상위권에 있는 소설 중 하나를 클릭해서 읽었다. 다른 것도. 골든 베스트에 들어 있는 전설의 웹소설도 곧이어 살펴봤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처럼,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새를 발견한 다윈처럼. 나는 조심조심 웹소설 세계를 탐구했다.


새로운 세상은 낯설고 신선했다.



모르는 단어의 향연


내가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았다지만 한글책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웹소설에는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꽤나 많이 나왔다. 마법사가 나온다기에 해리 포터를 떠올렸지만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9서클 마법사? 아, 여기에서는 '서클'이 등급을 나타내는가 보군. 게이트? 하늘에 문이 열렸다고? 이건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야? 헌터는 괴물을 사냥하는 거구나. 그래서 레이드물인가. 각성자라니, 이건 슈퍼히어로 같은 건가.  등반물? 갑자기 탑은 왜 나오는 거야? 탑은 누가 지은 거야? 거긴 왜 올라가는 거야?


회빙환? 아, 회귀/빙의/환생을 줄인 거구나. 웹소설에는 왜 이리 회빙환이 많지. 전생(轉生)은 또 뭐야? 내가 아는 그 전생(前生)이 아니잖아.


문워킹으로 문 닫고 나가기 전에 그냥 한번 읽어나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그냥 읽어 보기도 어려웠다. 웹소설 하나 읽는데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검색창에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 가며 열심히 조사했다. 다행히 인터넷의 도움으로 금방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몰아치는 전개


일반적으로 소설은 전개가 느린 편이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것은 거의 1/3 지점까지 읽어 나가야 비로소 서사가 제대로 펼쳐지기도 한다. 그런데 웹소설은 그런 게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10화 안에, 대부분 3~5화 안에 폭풍 전개가 시작된다. 웹소설이 최소 200화를 넘는 장편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진짜 극초반부터 전개가 몰아친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게이트는 왜 열린 건지, 을 왜 올라가는지, 이세계(異世界)는 어디이며 귀환자는 또 뭔지. 세계관에 대한 자세한 상황 설명 없이 바로 펼쳐지는 이야기들.


설명이 없기에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인터넷의 도움을 살짝 받으니 그 진입장벽도 '벽'이 아니라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문턱' 정도가 됐다. 오히려 지루할 틈 없이 사건이 휘몰아치니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갔다



함께 읽는


일반적인 소설은 오롯이 '혼자' 읽는 것이다. 물론 읽 전이나 후에 다른 사람의 독후감이나 서평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는 경험은 많지 않다. 독서 클럽에 몇 번 참여해 본 적도 있지만 그것도 '함께'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부족하다.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긴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는 온전히 나 혼자만 책에 빠져 있는 거니까.


그런데 웹소설은 매일 한 편이 업로드되다 보니 해당 회차에서 '함께 읽는' 독자들이 댓글로 소통을 할 수가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바로 커뮤니티로 달려가서 '오늘 마지막 장면 역대급!', '00 완전 신스틸러', '주인공 케미 미쳤다'하며 그날 본 드라마의 여운을 만끽하듯. 독자들은 댓글란에서 감탄과 비판, 선플과 악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누고 있었다.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요, 동시간에 읽은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는다는 기분은 꽤나 좋게 다가왔다.



겁은 나지만. 일단 들어가 보는 거지. 토끼굴 속으로.



겁은 나지만


표지와 제목에 막혀 돌아갈 뻔했던 나는 웹소설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르는 내용투성이인 데다 단어를 조사까지 해야 읽을 수 있다면 그냥 뒤돌아나가도 상관없었을 텐데. 희한하게도 글이 재미있었다.


웹소설이 드라마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즐겨본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를 다 보지는 않는다.


어떤 드라마는 인생 드라마라 울컥해하며 두세 번 보기도 하지만.

어떤 드라마는 너무 유치해서, 재미없어서,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안 본다.


읽어 보니 웹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웹소설은 너무 유치하고 재미없고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어떤 웹소설은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라 두세 번 보는 것도 있었다.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어떤 글을 쓰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거였는데, 웹소설을 직접 읽고 나니 몸소 체감이 됐다. 색안경을 벗고 편견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그래서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이제 와서 멈추거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거니까.


겁은 났지만 나만의 웹소설을 구상하고 습작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낯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차례였다.

이전 04화 이상하고 아름다운 웹소설 나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