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그 여자를 알게 된 후 맞닥뜨린 후 라고 해야 맞겠다.
그 이후의 꿈은 항상 그 여자에게 맹렬히 쫓기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내가 그 여자를 쫓아간 적은 없다.
어째서일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꿈에서라도 난 그 여자를 이해했기 때문일 거다.
사랑하는 한 대상을 송두리째 빼앗긴다는 건
아플 것이다.
난 경험이 없다.
삼각관계에 놓여있던 적이 없고, 누군가에게 짝사랑했던 남자를 빼앗겨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알 수 있다.
그 여자의 목소리, 표정, 눈빛, 걸음까지도 모든 걸 내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정확히 각인시켰기에 꿈마다 미친 듯 날 쫓아오는 그 여자에게 그대로 달아나준다.
반드시 날 제 편으로 잡아 설득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머리 위에 흐른다.
보기 싫다.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옆 아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길 없이 잡힌 듯 우진 씨와 앉아있다.
애처로운 척 날 살피는 날카로운 눈동자가 가슴 아프다.
그는 이미 내 앞에 있는 모습으로 내게 했던 많은 거짓을 말한다.
아주 어렸을 때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아름다운 곡이 카페 전체를 휘감는다.
하필 '김성호의 회상' 이라니
상황과 우리와 아주 걸맞지 않은 배경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지은이 뭐라고 했던 그대로 다 믿지 마"
기막힘보단 인간의 악惡에 놀랍도록 고찰하고 싶어진다.
이 와중에 그 여자에 대한 의심을 쥐어주다니.
그럴싸하게 그 말을 너무도 쉽게 믿고 싶도록.
"나야말로 우진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그 여자는 나에 대하여 우진 씨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새삼 다르게 각색해서 우진 씨에게 전달했겠다.
하지만 난 궁금하지 않기로 했어.
두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자체가 중요할까? 난 아닐 것 같아"
결연하게 그의 두 눈을 맹렬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마지막을 말하는 것 같네 이미. 이렇게 우리가 끝날 순 없잖아"
무슨 시도일까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게 재미있는 건지 날 잡는 시늉을 하는 건지
정신을 흩트려 뜨리는 그의 대사다.
"그럼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우진 씨를 그 여자처럼 미친 듯이 잡으려고 노력해?
그래야 되겠어?
그리고 이 순간에도 나에게 먼저 해야 하는 게 있어. 그게 순서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어떻게 지금 이런 식이야?
적어도 사과부턴 해야지!"
흥분한 나는 몸이 우진 씨 앞으로 쏠려진 채 힘을 주었다.
여전한 억울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 다.
잠시 입을 떼지 못 한 채 나를 주시하지만 마치 마지못한 듯
"미안해"
가볍게 뱉는다.
적어도 가볍게 느껴졌다.
옆구리 찔러 받는 사과는 가볍다 못해 공중분해 된다.
"더 이상 두 사람에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 감정적으로.
난 할 만큼 했어 나한테 연락 그만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무리하게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그곳에서 힘을 쓰고 싶지 않다.
따사로운 조명과 어디 한 군데 차가운 느낌 없이 온화한 기운의 그 카페는 앞으로도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예감하던 내 모습이었는지 따라 나오지 않는 우진 씨가 원망스럽지 않다.
자존심 강한 그가 모든 것을 알아버린 두 번째 애인을 잡으러 따라 나오겠는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참 매섭게 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