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진심 따윈 없었던 그에 대한 나의 정성스러운 애정에 정신이 혼미했나 보다.
자꾸만 떠오르는 그 둘의 애정싸움에 끼어들게 된 내 존재에 대하여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솔직해지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사실은 두렵다.
그가 떠날까 봐.
그리고 그 여자에게로 돌아갈까 봐.
난 그저 그 두 사람의 애정을 단단히 묶어주는 동아줄 역할인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나를 지르밟고 그들의 관계가 소중해지는 건 더 참을 수 없다.
우진 씨가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제발 내게 와 주길 바랄 뿐이다.
난 그 여자와는 다른 사람이란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졌고 그 여자는 놓쳤으니 내가 우위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므로 너와 난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바로 알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때의 내가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고 실제로 매우 다르다.
성격, 말투, 외모, 배경 외 전부가.
하지만 사랑 앞에선 같은 모습이기도 한 것을 우리 둘, 그러니까 그 여자와 난 안다.
알게 돼 버렸다.
그 여자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에게서 꽤나 불쾌한 친밀감을 느꼈을 거다.
처음엔 상관없었다.
과거의 연애사 따위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지지부진하게 길게 늘어뜨리는 이별을 한 사람이 대부분 일거다.
쿨하고 센스 있으며 감각적이고도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좋은 이별이란 없다.
그러니 우진 씨 또한 이별의 끝맺음이 원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나는 또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내가 지겹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면서 더 집중할수록 그 여자의 집착이 심해져만 가는 건지
그걸 어쩌지도 못하는 우진 씨를 이해할 수 없고
그의 진심과 진정으로 원하는 걸 알 수 없다.
이건 정상이지 않나? 이런 생각조차 쓸데없는 바보가 하는 걸까?
결국 난 바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우진 씨는 한 시간에 한 번씩 하는 연락을 집요하게 멈추지 않는다.
전화와 문자를 번갈아가며 내키는 대로다.
내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을 내게 지어준다.
구구절절이 내가 무슨 일을 겪어도 그의 곁에 남아 주기를 재촉한다.
그 여자의 이별은 상대가 본인이지만 그 여자 혼자만의 문제일 뿐이니
우린 자극제가 되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 여자가 돌발행동을 하고 우리 둘을 흔드는 사건이 생기더라도 그럴수록
더 굳건하게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자는 논리다.
그는 사랑을 위한 쟌 다르크를 원하고 있다.
그게 맞는 걸까?
혼미해지는 정신머리는 사납게 날뛸 뿐이다.
그럴수록 그에게 마음이 멀어지는 간격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도 싶다.
나와 함께 한 사랑, 진심, 진실, 신뢰 그 어느 것도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 연애의 끝은 정해져 있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깊이 헤매고 있는 건
나 혼자라는 확신에 정신이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