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너의 엄마라는 이유
우라질…. 오늘은 일하는 것마다 짜증이 난다. 날씨가 급격히 더워진 탓도 있겠지만 할 일이 밀려있다는 것이 나의 효율성을 더욱 떨어뜨린다. 항상 일이란 것이 그렇게 밀려서 밀려서 급하게 되면 마음이 성질을 부리듯 까칠해진다. 일명 성질까지 못돼 처먹어진다.
안 그래도 까칠한데…. 더구나 하기 싫은 일이라 그런지 속도는 더더욱 안 난다. 오늘 해결해야 할 1순위는 옷방 정리다. 여름이 성큼 다가와서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못할 일이다. 더구나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에 보낼 때 여름옷을 찾느라 아침마다 숨바꼭질하는 걸 생각하면 오늘은 반드시 정리를 해야 한다.
정리에 잼병인 나는 철마다 옷장을 뒤집는 일이 스트레스다. 마음 같으면 옷을 다 버리던지 아니면 어마 무시하게 큰 옷방에 사시사철 옷을 다 걸어놓고 더 이상 정리할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까지는 둘 다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결국 그 몫은… 나다.
정리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나 나는 가정주부가 체질에 안 맞다는 결론에 이른다. 가정주부로서 노련함이라고는 10년 차가 되어도 도대체 늘어나질 않는다. 내 옷 하나일 때는 그래도 마음먹으면 끝나는 것이 보이기라도 했는데 남편과 아이 둘의 옷까지 다 갈아엎을 생각을 하니 옷방에 옷산이 우뚝 섰다. 히말라야 못지않게 높은 산이다. 못하는 일을 하려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새벽부터 매일 바쁘게 움직여도 종종걸음 치는 느낌과 나의 애씀은 도대체 빛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사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옷장 정리에 대동하며 심오함을 던져본다. 옷 정리는 반도 못했는데 아이들 배고프다는 소리에 번뜩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있는 반찬 없는 반찬, 최대한 간편하게 차려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겨우 차려서 먹이면서 멍 때리고 싶은 걸 참고 서둘러 설거지를 하러 간다. 아이들은 오늘따라 먹는 속도가 안 난다. 어제부터 하기로 했던 아이스크림 만들기마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저 옷 산을 보면 아이스크림 만들기고 뭐고 미루고 싶다. 늦게 먹는 아이들에게 협박하며 시간제한을 두고 아이스크림 만들기 딜을 걸었다. 이건 명백이 아이들에게는 협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아이들과도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 요리 저리 궁리를 해본다.
결국 나의 승리… 이자 일방적 통보로 아이스크림 만들기는 내일로 미뤄졌다. 남은 옷 정리를 위해서 감옥에 끌려가듯 옷방으로 향했다. 한참을 정리하고 아이의 작아진 옷들을 박스에 넣고 있는 데 밖에서 유리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다행히 유리그릇이 깨진 건 아닌 것 같은데… 큰 아이가 엄마 미안하다며 미리 자진 납세하며 들어왔다. 별일 이겠나 싶어서 나갔는데 나한테 별일이었다.
일명 자죽염, 우리 집에서는 소금 사탕으로 불리는 소금 한통이 통째로 거실 바닥을 가득 메웠다. 머리가 지끈 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눈치 빠른 둘째는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 사라졌으나 눈치 없는 첫째는 상황을 설명하고 나름의 변명을 하느라 나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켰다. 결국 등짝 스매싱 한대를 맞고 사건은 종료되었다. 먼지 가운데 떨어진 자죽염을 보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통에 담았다. 먼지 묻은 소금을 물로 씻을 수도 없고 우선 채반에 다 모아서 먼지를 떨어내고 작은 가루들은 날려 보내고 그나마 큰 죽염들은 털어내는 작업을 두세 번 하는데… 차라리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등짝 스매싱에 놀라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들랑구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온 집안이 완전 초토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금을 다 털어내고 이차저차 담아놓고 보니 오늘 옷 정리는 고만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미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대충이나마 남은 에너지를 쏟아 씻기고 양치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큰 아이와 눈 마주치기가 민망했다. 아이가 실수를 한 건 맞지만 그렇게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등짝 스매싱은 감정이 섞였다는 나 스스로의 자책 때문에 부끄러웠다. 다 같이 누워서 매일 하던 데로 감사일기를 하자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차마 감사일기라고는 못하고 오늘 속상하거나 어려운 일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러자 이불을 뒤집어썼던 첫째가 소금 사탕 엎은 일이 속상하다면서 다시 눈물을 그렁그렁했다. 잘못 닫힌 뚜껑을 다시 닫으려 했다고 하는데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우리 이쁘니의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결과만 보고 치울 일에 화가 났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한참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감사일기를 떠올려보자고 했다.
둘째는 잊고 있던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떠올렸다. 내일은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할 수 있으니 미리 감사한 단다. 내일은 꼭 잊지 말고 만들어 먹자고 약속했다. 꼭꼭!!!
첫째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고백처럼,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다고 한다. 이런… 우라질….. 그렇게 혼나고도 그냥 어떤 조건과 이유도 없이 그냥 내가 자신의 엄마라서 좋다니… 부족한 것 투성이, 특히나 오늘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탄 날이면 더더욱 엄마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에 이런 고백을 듣다니 더 부끄럽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내가 엄마라서 좋다니…. 다른 엄마를 안 만나봐서 하는 소리겠지만… 엄마라는 이름에 항상 부담감을 갖고 사는 나에게 이런 조건 없는 사랑 표현을 해주다니,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건데, 어쩌면 내가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큰 무게감을 지우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의 엄마라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그날은 말 못 한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어서 너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