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루 세끼 밥 해 먹이는 것이 곤욕이다. 한두 번은 간단히 해먹 인다 해도 한 끼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여야 한다.(양심상...) 더구나 여름이라 불 앞에서 저녁 한 끼 준비도 쉽지는 않다. 덥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매일 먹는 밥은 왜, 세끼나 되는지,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왜 배가 고픈지 딜레마다.
예전에 남이 차려 준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대체하는 다양한 알약에 대한 효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왜 알약 같은 거로 대체하려는 걸까? 이 풍성한 식감과 식자재의 깊은 충만감을 느낄 기회를 왜 빼앗는가? 같은 생각을 했는데 막상 내 손으로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보니 왜 빨리 이 알약이 발명되지 않는지 애가 탄다. 이제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식사의 쳇바퀴가 두렵다. 엄마의 밥상은 개뿔…. 난 단지 내 식당이 있는 아파트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요 며칠 엄마가 집에 와 계신다. 급하게 맡은 일 때문에 아이들을 잠깐씩 맡겨야 하는데 이를 믿고 맡길 사람은 역시나 친정엄마뿐이다. 이럴 때마다 딸 가진 엄마가 뭔 죄인가 싶다. 뭐 딱히 시어머님에게 부탁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믿고 맡길 사람이 친정엄마뿐인 그것이 항상 나는 불만 아닌 불만이다. 육아하느라 고생했는데 내 노후를 또 딸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이런 구조가 참 맘에 안 든다. 거대 어젠다까지 내가 불평불만을 해 봤자 프로 불편러일 뿐이라 일축한다.
간단히 먹자에 합의를 본 엄마와 나는 아이들에게 만둣국을 끓여주기로 했다. 포장된 사골국물에 물만두만 넣으면 되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간단한 요리다. 간단히 한 끼 때우자는 생각으로 만들고 식사 준비를 마쳤다. 나름 시간 대비 훌륭한 한 끼다. 차려 놓고 밥을 먹는 타임!!! 요거만 하면 오늘 주방 문을 닫을 생각에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진다.
만두를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는 첫째 아들랑구다. 사실 먹기 싫어서는 아닌 데 아까 한두 개 먹은 간식으로, 허겁지겁 배고파 죽을 지경은 아닌 상태였다. 집중력이 약간 흐려진 상태에서 만두를 먹다가 결국 그 젓가락 사이로 만두가 빠져나가는 걸 잡으려고 한다. 역시나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 만두 하나를 잡다가 대접 전체가 자빠졌다. 한숨이 푹 나온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버럭 했을 타이밍이다.
이 순간에 나를 제지해준 한마디!!!
“아이고!!! 야 이놈아~~”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지 뭐 하는 거냐? 엉? 왜 그리 조심성이 없는 거야?” 나 대신 엄마가 한 소리 해 주신다.
엄마도 며칠 있어 보니 아들랑구며 딸랑구의 구접스러움에 한숨이 푹푹 나오나 보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좋은 할머니이기도 하나,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타입의 할머니는 아니다. 딸내미의 힘듦이 눈앞에 보이니 그것 또한 안쓰러운 듯하다. 하루 이틀 아니고 며칠 동안 지켜보니 아이들의 뒤치다꺼리가 생각보다 많아서 딸의 고생스러움에 마음이 쓰이시나 보다.
간단히 한 끼 먹자던 사골 만둣국은 거실의 카펫을 사골국물로 다 적시고, 아들이 잡으려던 만두는 의자에 짓이겨져서 한마디로 거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 와중 불행 중 다행은 다 식어버린 만둣국이라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때 같으면 호흡조절에 실패했을 텐데 할머니의 일침으로 나는 순간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나 대신 누군가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느낌에 아들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또 엄마 앞에서 힘듦을 완전히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는 한마디가 참 위로가 되는구나 싶다. 더구나 할머니한테 혼나고 있는 아들을 나까지 핀잔주기에는 그리 혼날 사연도 아니다. 혼나면서도 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하하하. 이런 너의 당당함을 엄마는 사랑한다.)
“그래 맞아. 실수할 수 있지만 이런 실수가 잦아지면 엄마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처리하느라 너무 힘들기도 하고 식사시간이 엉망진창이 되니까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 있겠지?” 이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있었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오늘 착한 엄마 모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저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 말하고 아이가 자신이 실수한 것들을 닦거나 치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마무리했다. 덕분에 아들에게 협박이 아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았다.
“엄마, 실수였지만 죄송해요.”
사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별거 아닌 일에 자주 화를 내게 된다. 이성을 가지고 있을 때는 충분히 아이라서 실수할 수 있는 일들이라 생각하면서도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감정이 먼저 반응을 하게 된다. 당구의 쓰리 쿠션이 생각난다. 직진으로 오면 세게 부딪힐 일들이 쓰리 쿠션으로 속도를 줄이고 방향도 바꾸면서 안정적인 골로 이어진다. 육아도 그런 듯하다. 할머니라는 쓰리 쿠션으로 너도 나도 멘탈을 부여잡은 날이다. 나에게는 직진 육아가 아닌 쿠션 육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