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6일
배드민턴 클럽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임원. 어쩌다 보니 3년째. 임원이라 해도 어떤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득 되는 것? 없다. 클럽 어른들 술자리 가면 다른 2030에 비해 더 친근하고 덜 껄끄럽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임원이다 보니 어른들도 말 붙일 일이 많고, 나도 말 섞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점이 좋아서 하겠다고 나선 것도 있다.
본의 아니게 우리 클럽은 배드민턴 레슨코치를 두 번이나 바꾸는 불상사가 있었다. 첫 번째, 내가 가입했을 때 담당했던 코치는 이미 우리 클럽에서 5년째 레슨을 하고 있는 코치였다. 5년이면 길다.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고 레슨 스타일도 더 이상 격변하지 않는다. 신선한 시도와 익숙한 프레임 속에서 열심히 달려온 그에게 남은 레슨자는 다섯 명이었다.
월수금 저녁반 레슨은 코치들에게 메인 수입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많게 받으면 20명까지 레슨 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달랑 5명을 레슨자로 둔다는 건 수입이 반토막 이상 난다는 것. 그러니 코치도 클럽 회원들도 서로가 민망한 상황이 되는 거다.
결국 코치가 그만두면서 새로 모시게 됐다. 새로 온 코치는 국가대표 출신인 젊은 친구였다. 이력서에 '병역'란을 공란으로 두고 살았던 난 그 친구가 미필자인지 뭔지 몰랐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코치 면접 당일날 클럽 회원이 코치에게 "군대는 다녀왔냐" 물었고, 빠르면 수개월 뒤 국방의 의무를 다 하러 떠날 수 있다고 실토했다. (그 친구가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다). 결국 언제 떠날지 모르는 코치지만, 그래도 국대한테 레슨 받아보겠다며 클럽 코치로 선정됐다.
정확히 4개월 뒤 그는 불려 갔다. 고로 새로운 코치를 또 구해야 했다. 새로 들어온 코치는 약 1년간 우리 클럽에 머물렀다. 나도 몇 번 레슨을 받아본 적 있지만, 월 10만 원이 내게도 적은 돈은 아니고 그 돈을 투자해서 레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분은 아니었기에 2개월 하고 레슨은 접었다. 다른 레슨자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각자의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새로 온 코치님도 떠나게 됐고 이제 다시 또다시, 또 또다시 새로운 코치님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와버렸다.
올해는 레슨 총무를 맡게 됐다. 레슨 총무가 딱히 하는 일은 없다. 평소 레슨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레슨자들이 잘 적응하는지 지켜보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해결하고, 코치와 레슨 일정을 짜고, 밴드에 전달하고. 그런 잡일 정도다. 헌데, 하필 3월부터 코치 자리가 공석인 것뿐.
사실 내가 레슨 받을 분을 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애정도 있고 이왕이면 좋은 분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코치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면서 유독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저 알아요?"
배드민턴 동호인으로써 자격미달 일지 모르겠지만 난 배드민턴 선수들을 잘 모른다. 경기를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영상을 많이 봐야 는다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걸 보면 그 정도 열정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땀 흘리고 내가 직접 쳐보는 게 훨씬 재밌다. 그렇다 보니 이용대 선수나 하태권 감독처럼 일반인들도 알만한 딱 그 수준에 멈춰있다.
이런 나의 얕은 정보력은 배드민턴 동호인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나 이상은 알고 있단 소리다) 그렇다 보니 누구누구 아카데미가 유명하대, 누구 선수가 어디서 코치를 하고 있대, 라는 정보들에도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연락 온 코치들이 하나같이 "제 이름 들어보셨어요?" "저 누군데, 아시죠?"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 당연히 알죠. 누구누구 코치님이시잖아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하겠지. 나도 딱 그 선까지 대답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 이상으로 입 발린 말을 할 자신도 없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털어놓자면 제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언정 저 질문을 왜 하는지 의도를 잘 모르겠다. 이용대 선수가 "저 아세요? 들어본 적 있으세요?" 하진 않잖아. 유재석이 유퀴즈에서 "저 본 적 있으세요?" 하진 않는단 말이다.
온라인에 내 연락처가 공개되어있던 탓에 코치를 구하고도 한동안 많은 코치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가장 불쾌했던 건 "저 아무개인데, 뭐 말씀 안 드려도 아시죠? 레슨 코치 아직도 구하나요?"라는 전화였다. 흠. 우리 클럽의 체면과 명예를 생각해 참았지만, 코치도 클럽도 갑을관계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가 아니다.
겸손과 당당함, 교만함과 자신감. 그 경계선을 오가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