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과 책임감 사이
개수대에 조금 남은 우유라도 버릴 세면 "버린 거야? 아깝다.. 화분에 주지" 하는 엄마와 살고 있다. 마시고 남은 요구르트병을 두면 남은 몇 방울이 아깝다며 물을 부어 화분에 준다. 깨끗하게 말려 요구르트병에 붙은 비닐 포장과 뚜껑을 분리해 따로 정리해둔다.
그런 엄마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어쩌다 종이 분리수거함에 섞여 들어간 실오라기 같은 비닐은 용케도 찾아낸다. "저기요? 여기 쓰레기 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런 엄마의 한 마디가 때론 잔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칫솔은 재활용품이 아닌데 자꾸 재활용 봉투에 넣어서 다시 골라내느라고 힘들어요"
"색을 입힌 플라스틱과 투명 플라스틱을 섞어버리면 색을 입힌 건 재활용이 안 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요"
뉴스에 나오던 쓰레기 선별장 관계자 인터뷰를 듣고 와 전했을 때 엄마는 놀란 눈치였다. 내 딴엔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조금은 덜 번거롭게 분리수거를 할 줄 알았다. 다음날 부엌 한 켠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검찰 조사용 파란 박스가 생겼다.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색 플라스틱, 투명 플라스틱, 하얀 비닐, 색깔 있는 비닐, 일반 플라스틱 용기, 깡통들. 이게 이렇게까지 나눠지는 것들이었어? 싶을 정도로 세분화되어 저마다 봉투에 담겨있었다. 엄마, 이럴 거면 보기도 흉하니까 분리수거용 쓰레기통 살까? 얼마 안 하던데. 물었다. "그것도 쓰레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거다. 그래서 차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질문을 던지진 못했다. 그건 마치 "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내가 싼 똥을 왜 내가 치워야 해?"라고 묻는 격이니까. 문제는 머리로 알면서 안 하고 산다는 데 있다. 왜? 귀찮으니까.
얼마 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재활용 쓰레기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플라스틱 병에 붙은 비닐을 분리해야 하는 일을 왜 내가 (시민이 직접)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말했다. 누군가 한술 더 떠 그럴 거면 비닐을 붙이지 말고 사이다엔 사이다, 콜라엔 콜라, 병에 글자를 새기면 좋을 텐데,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면 원자재 가격이 비싸지니까 못하는 거겠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이거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비닐 대신 플라스틱에 직접 활자를 새겨 넣는 것도 원자재가 비싸니 못하는 걸 거란 생각도 신선했다. 모든 발상은 "재활용하기 너무 귀찮아"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재활용과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했다. 바꿔 말하면 무책임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와중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나라도 다르지 않다는 것.
엄마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그다지 없는 듯했다. 나 역시 그 '귀찮음'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까. 내가 마신 요구르트병을 방에 둬도 그 병은 엄마의 손을 거쳐 재활용되고 있었으니까. 편하게만 살았는데, 언젠가부턴가 이게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가 두면 엄마가 또 이걸 하나하나 뜯어서 말리고 있겠구나, 상상 속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최근 들어 요구르트를 마시면 물을 부어 화분에 주고 부엌에 갖다 놓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말려놓은 요구르트병에 딱 달라붙은 포장 비닐을 떼어내 분리수거 봉지에 담아 두는 기술도 장착했다.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엄마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린스 통에 아주 조금 남은 린스를 보더니 빈 린스 통을 들고 화장실에 간다. "이게 막힌 데 넣으면 잘 뚫어주는 역할을 한대". 8년 전인가 사다 놨던 매니큐어 통들이 창고에서 발견됐을 때. 난 너무 오래돼서 못쓰니 버리자고 내놨고 엄마는 내가 버린 그것을 다시 주워왔다. 이걸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단다. 혹시 쓸 수 있는 것 없는지 다시 보란다. 나는 결국 묻고야 말았다. 엄마 왜 그렇게까지 해?엄마는 별 대꾸 없이 날 쳐다봤다. 표정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네가 싼 똥을 왜 내가 치우고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실제로 등장하는 영화 <맨 오브 히스 워드>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 그 쓰레기들이 모인 거대한 산. 90년대 난지도의 수백 배는 되어 보이는 광야와도 같은 그 산더미 사이사이로 작은 점들이 열심히 움직인다. 카메라는 작은 물체들을 서서히 조명한다. 거뭇거뭇한 움직임이 점점 또렷해진다. 점은 사람이었고, 사람 중에서도 체구가 아주 작다는 걸 알 수 있다. 뭐라도 팔 거리를 찾아내려 고군분투하는 빈민국의 아이들의 현주소. 깡마른 팔다리로 쓰레기 더미를 헤쳐나가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헉소리가 나올 무렵 등장한 교황님이 말한다. "지구가 이렇게 된 데 당신 책임은 없을 것 같나요? 그럴 리가요."
이래저래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쓰지도 버리지도 않는 엄마와 살다 보니 이제는 조금 바뀔 때가 온 것 같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10년 전쯤, 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 연구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한참 이야기하다 책장 한쪽에 예쁜 병뚜껑들을 모아두셨길래 나름의 취미생활인가 싶어 혹시 수집하는 거냐 여쭤봤다. 교수님이 날 돌아보던 표정, 되묻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
"수집은 무슨, 버리려고 모아둔 거지. 상식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