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봄소풍

by 알로

아주 작은 생각의 습관을 바꿔보고 있다.


뚜벅이다 보니 거리의 온갖 행패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버젓이 녹색 불일 때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횡단보도를 침범하는 버스들. 보행자에게 한치의 양보도 없는 차량들. 유동인구가 많은 인도 한가운데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버스 안에서 내뱉는 목청 큰 소리들. 저 멀리서부터 갓길로 걸어가는 나를 향해 돌진해오다시피 하는 운전자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마주할 때마다 짜증이 올라왔다.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량이 눈앞에 급정거 하면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었다. 마스크 사이로 담배연기가 훅 들어올 때면 저 꽁초를 입 안에 넣어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왜 이런 자잘한 것들에 흥분하는 것이며 순간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걸까. 방금 내가 욕설을 퍼부은 저 차량의 운전자가 혹시 우리 회사 임원은 아닐까. 아빠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 누군가는 나처럼 혐오의 시선을 보내지 않았을까.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어 단 한 번도 속시원해본 적이 없다.


낯선 타인을 미워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는커녕 내 기분만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선팅으로 시커먼 유리창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한들 운전자의 시야엔 어차피 내가 없다. 결국 내가 뱉은 분노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조금 의도적이긴 하지만 웃으며 째려보는 걸로 바꿨다. 눈총을 주되 미소도 날려주고 싶었다. 너 이 자식 지금 자동차 주제에 횡단보도를 침범했냐, 는 분노의 눈길이 아닌 짜식 많이 급했냐, 는 애정의 눈초리.


매일 출퇴근길이 수행의 장이었고 실험의 장이었다. 못 봤을 수 있지, 급했을 수도 있지,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 내 가족도 누군가에게 그랬을 수 있고 나 역시 무의식 중에 그랬을 수 있다. 질서와 법규는 지켜야 마땅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매 순간 거리의 무법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공식을 되새겼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그들에게 눈길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욕을 퍼붓고 눈이 찢어질 듯 째려봐줘야 속이 시원했는데 더 이상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바꿔볼까나, 가볍게 시작했던 마음가짐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찾아왔다.


제아무리 마음을 좋게 가지려 해도 일이 틀어질 때는 있다. 당일 보도 큐시트가 그렇고, 촬영도 편집도 기사의 톤도, 내가 할 수 있는 그 선을 넘어가버렸음에도 여전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은 매일 생긴다. 비단 직장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 약속, 운동, 취미 그 모든 것들에.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음을 인지했을 때 그 모든 걸 10초짜리 고민이라 생각해봤다. 열 걸음 떼고 나니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수많은 책에서 마음을 비우세요, 무의식은 의식을 이깁니다, 용서하세요, 10초짜리 고민으로 하루를 망치지 마세요. 주문처럼 되뇌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천해볼 생각은 못 했다. 길을 아는 것과 걸어가는 건 천지차이라는 잡스 형님의 말처럼 실제로 해보니 새삼스럽다. 쉽고 편하고 재밌다.


두 달 전부터 기다려왔던 약속이 깨졌다. 바쁜 분 모실 자리라 고르고 골라 고대하고 열망하던 밤이었거늘, 생각지도 못한 일로 두 달 동안 가져온 설렘은 산산조각이 났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이쯤되니 계획대로 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저 매 순간 충실하게 묵묵하게 나아가야겠다고, 그렇게 신중하게 살아도 어차피 인생 한낮 봄소풍처럼 짧은 거라고, 되새기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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