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건 없다

by 알로

처음 환상이 깨진 건 아마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절대적인 취향이란 내게 아름다운 고집처럼 여겨졌다. 무언가를 고수하는 것. 특별한 이유를 두는 것.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라는 사람보단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 대하기 편했으니까.


낫또를 못 먹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일본 소학교에서 급식을 먹던 날 반찬으로 낫또가 나왔다. 말도 안 통하는데, 머뭇거리는 사이 짝꿍의 식판은 비워졌다. 내 식판엔 덩그러니 낫또만 남았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점심시간이 끝나갈 터였다. 남기면 선생님한테 혼났다. 어쩔 수 없이 입에 쑤셔 넣었다. 입을 어설프게 다물고 식판을 반납했다. 화장실로 달려가 그대로 뱉어냈다. 그 후론 낫또 냄새만 맡아도 기겁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했다. 아침마다 단출한 식사가 나왔다. 미소시루 (일본식 된장국)와 고실고실한 흰쌀밥, 단짠단짠의 장아찌, 김 한 봉지, 계란말이 그리고 낫또. 이놈의 낫또는 나를 지겹게도 따라다녔다. 반면 내 옆방 친구는 낫또 성애자였다. 봉지를 뜯어 김을 바시락 바시락 잘게 부신 다음 낫또에 섞어 밥에 비벼먹는다. 삼시세끼 유해진이 하루 종일 낚시 허탕치고 차 셰프가 끓여주는 콩나물국 들이키듯 겁나게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에 반해 따라먹게 됐다. 도대체 이게 맛있어? 무슨 맛이길래 저렇게 맛있게 먹어?라는 호기심도 일었지만,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따라 했을 뿐이었다. 눈 딱 감고. 그렇게 먹은 낫또는 생각보다 맛있었고 지금은 바나나에 낫또도 갈아먹을 정도로 (다이어트 식품으로 최고랍니다) 낫또를 좋아한다.


늘 라떼나 마끼아또만 시키던 커피 취향도 10년을 고수하다 단칼에 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곧 죽어도 못 마실 것 같았던 에스프레소도 시도해볼 법하겠다, 싶다.


목으로 넘어가는 액체류는 무조건 차가워야 했다. 수족냉증에 감기가 온다한들 소용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걸 마시라는 엄마의 당부도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등산길에 오른 정상에서 보온병에 담긴 뜨신 물의 맛을 알아버렸다. 그 후로 하루에 두 잔씩 따뜻한 물을 마신다. 과식을 해도 단식을 해도 술을 마셔도 따뜻한 물은 기상과 취침 전후 필수 음료가 되었다.


먹는 걸 빼고 생각해볼까. 엄마가 딱 한 번 나를 저승사자라 부른 적이 있다. 20대 초반을 제외하곤 내 옷은 거의 다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었다. 빨랫대가 바둑판 수준이었다. 검은색이 8할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빨랫감을 거실로 들고 나와 한 벌 한 벌 널어주던 엄마가 "이야......." 하고는 한참을 말이 없다. 돌아보니 빨랫대가 시커맸다. 나도 깜짝 놀랐다. 이게 다 뭐냐 물으니 네 옷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집에 저승사자가 사나 봐. 그땐 그렇게 검은색 옷만 입었더랬다. 지금은 무지개다. 닥치는 대로 입지만 밝은 색상이 훨씬 많아졌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5년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있었다. 몇 번 읽으려다 도저히 안 읽혀서 관뒀다. 가장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기숙사를 옮길 때 우연히 꺼냈고 오기가 생겨 첫 장을 펼쳐 들었다가 단숨에 읽었다. 다 때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타의론 쉽게 바뀔 수 없는 것,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온 자의로 한순간에 바뀌는 것.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취향은 그런 것이었다.


비단 기호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음식, 옷, 환경, 취미는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살아도 저 사람이랑 친해질 일은 없겠다, 싶은 사람과 한순간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상형이 아닌 사람과 만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싫다'는 말은 어쩌면 미래의 나에 대한 존중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눈앞의 상대는 물론 미래의 나에게도 미안해해야 하는 말.


절대적인 건 없다는 생각을 버린다 해서 급격하게 포용력이 넓어진다거나 취향이 바뀌진 않는다.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진짜 좋고 진짜 싫은 것에서 진짜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지금은 아닌 것으로 바뀐 것뿐이다.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여지는 둔다는 건 여유를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오랜만에 비가 많이 온다. 침대가 창가에 있어서 빗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린다. 방 창문 위엔 지붕이 있다. 처마에 고여있던 물이 무게를 싣고 마당으로 호도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청아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내일도 오늘처럼 격하게 싫어하는 순간 없이 너그럽게 보낼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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