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사람

by 알로

아빠는 유리창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귓머리 모습을 더듬어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장에서

종 칠 때를 기다렸다


피천득 <기다림>




책 읽다가 문득 생각난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


엄마는 일요일마다 할머니 댁에서 종일 지내다 온다. 여기서 할머니란 엄마의 엄마가 아닌 아빠의 엄마다. 결혼생활이 35년을 넘어가면 네 어머니 내 어머니 다 같은 우리 어머니가 되나 보다. 고부갈등의 모습을 엄마나 할머니한테서 본 기억이 없다.


어제는 할머니 컨디션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소엔 그렇게 좋아하시더구먼 삶아간 국수도 다 안 드시고. 버섯 전도 안 드시고. 아빠만 맛있게 드시더라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다음 날 우리 집 밥상머리 화두는 할머니 이야기로 채워진다. 보통은 할머니 상태가 이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는 식인데 오늘은 달랐다.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 중에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

"모르겠어. 뭔데?"

"아빠가 교동 국민학교 다닐 때."

"교동 국민학교가 어디야?"

"종로에 있는 거. 그 북촌 근처에 있는 학교였지."

"응."

"어느 날은 아빠가 도시락을 놓고 간 거야. 할머니가 부랴부랴 도시락 갖다 주려고 학교를 찾아갔대. 복도를 지나서 교실 안을 이렇게 (엄마는 고개 내미는 시늉을 했다) 보는데 아빠가 한눈에 들어온 거지. 다른 애들은 막 깔깔 대고 장난치고 하는데 아빠는 선생님 얼굴만 쳐다봤다는 거야."


또래보다 키가 작았지만 똘똘했던 아이. 놀림 좀 받았을 법한 큰 머리. 소처럼 맑은 눈. 앙증맞게 다문 야무진 입술. 땅꼬마 시절 아빠 사진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똑 부러지고 성실했겠지. 지금 이 순간 온 세상에 선생님과 나 둘만 있는 것처럼 몰입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앉아있었겠지. 나는 아빠의 그 표정을 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할머니가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대. 얼마나 예뻤겠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똘망똘망한 아빠랑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할머니. 그 장면이 떠올라서 엄마는 참 좋아."

"그렇지. 야무지고 공부도 잘했고."

"한참을 바라봤대. 엄마는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그림이 그려지잖아."

"응. 상상이 간다."


누군가 예쁘고 사랑스러워 한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나. 기껏 해봐야 엊그제 집 마당에 찾아온 길고양이 정도다. 나비 씨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자꾸 내 옆에 와서 몸을 비벼댔다.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자식을 바라보는 눈길과는 다른 거겠지. 우리 엄마는 요즘도 아침 먹고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때가 있는데 그 눈빛은 감히 내가 가져본 적 없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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