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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11. 2020

아빠의 검은콩자반

엄마와 아빠는 대학 선후배다.

엄마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빠를 만났다.


"옛날에 그 철통 도시락 있지? 네모난 거. 아빠가 매일 도시락을 싸왔거든. 근데 반찬이 맨날 똑같아. 검은콩자반이랑 김치랑 밥만 딱 담아서 오는 거야. 4년 동안. 매일 아침 할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거지. 할머니 요리 솜씨 알지? 얼마나 맛있었겠어. 근데 학교에 오면 그게 범벅이 되잖아. 그냥 막 다 뒤섞여있는 거야. 맨날 똑같은 반찬만 싸오면 창피할 수도 있고 그렇잖아. 근데 아빠는 참 당당했어. 그리고 참 맛있게 드셨어. 그때 반했던 것 같아."


멋쩍은 아빠가 대답한다.


"내가 뭐 다른 걸 먹어봤어야 뭐가 맛있는지 알지 알지. 근데 그 밥은 맛있었어. 창피할 이유도 없었고."


아빠는 지금도 검은콩자반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여전히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반찬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내 엄마를 기쁘게 한다.


"보이지? 내가 이래서 아빠랑 밥먹는 걸 좋아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드시잖아. 깨끗하지? 아, 근데 여기 시금치 하나 남았는데요?"


미처 보지 못했다는 듯 마지막 남은 시금치를 입에 가져가는 아빠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 밥상엔 늘 콩자반이 올랐다. 그것은 아주 작은 그릇에 담겨 아빠의 밥그릇과 국그릇 사이에 놓인다. 나도 엄마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건 아빠를 위한 반찬이니까.


어딜 가나 검은 콩자반을 보면 아빠가 생각난다. 자랑스러운 아들, 하지만 남들처럼 좋은 반찬은 해주지 못해 미안했을 아들. 콩자반만큼은 정성을 다해 할머니는 만들었을 거다. 배불리 먹으라고 아주 듬뿍 담았을 거다.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 소박하지만 소복한 자태로 자리하는 엄마식 콩자반. 그렇게 아빠를 향한 콩자반 사랑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친구와 저녁자리를 가졌던 가게에서 검은콩자반 설탕절임을 팔고 있었다.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유리병에 담겼는데 만 이천 원이나 한다. 검은콩을 우려낸 물은 요구르트에 타 먹으면 제맛이고, 검은콩은 반찬으로 먹기 적격이란다. 보자마자 눈에 밟혀 끝끝내 한 통을 사 왔다.


다음 날 아침 아빠 앞에 들이밀었더니 환하게 웃는다. 개봉하고 일주일 내로 먹어야 한다는데 그 작은 통에 담긴 검은콩 절임이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거 일주일 내로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많이 남았네."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도 엄마가 만들어준 콩자반도 앉은자리에서 해치우던 아빠가 내가 사 온 콩절임은 뭐가 그리 아까운지 참새 눈곱만큼씩만 맛보곤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콩자반은 또 그렇게 사랑을 대물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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