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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pr 11. 2021

주인 눈치 살피는 강아지

가와구치는 특별했다. 그는 순한 강아지 같았다. 점장은 그를 꽤나 거칠게 다뤘다. 괴롭히고 싶게 생겼단 말이지. 종종 중얼거리는 점장을 볼 때면 성격파탄자가 아니고서야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몸이 바르르 떨렸다. 점장은 가와구치가 작은 실수만 해도 꿀밤을 세게 쥐어박거나 장난인척 정강이를 대차게 발로 차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행여나 가와구치가 반항하며 돌발행동을 하진 않을까 손에 땀이 났다. 아파요, 아파요, 외치며 도망 다니는 가와구치 목소리는 학대당하는 강아지가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점장의 폭력은 날로 심해졌다. 선을 조금 넘는다 싶으면 가와구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 좀 하세요, 왜 애를 때려요? 점장은 씨익 웃으며 돌아섰지만, 종종 기분이 안 좋은 날엔 나까지 덩달아 혼냈다. 그럴 때마다 가와구치는 능글맞게 웃으며 중재 역할에 나섰다. 에이, 제가 잘못한 건데 두 분이 왜 그러세요. 제가 실수 안 할게요.


그는 결코 일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실수도 간혹 있었고 손님들이 애타게 찾을 만큼 살갑거나 밝은 대화를 나누는 재간은 더더욱 없었다. 항상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듯한 멍한 눈동자를 하고 홀을 돌아다녔다. 마르기는 또 엄청 말랐는데 헐렁한 유니폼을 입고 앞치마를 과하게 묶어 가느다란 허리통이 다 드러나곤 했다. 소매를 반쯤 걷어올리고 주방에서 서비스용 반찬을 담고 있으면 쿠마 씨가 담배 한 대를 뻐끔뻐끔 피우며 '너는 매가리가 없어서 남자 노릇은 제재로 할 수 있겠냐'며 놀려댔다. 가와구치에겐 동갑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엔가 휴대폰에 붙은 스티커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죠? 물었을 때 둘러서서 구경하던 모두가 장난으로라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점장은 마감하면서도, 화로에 숯을 넣으면서도, 종종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런 놈이 어떻게 그런 여자를 만나지.


그러니까 묘한 매력이 가와구치에겐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비록 점장한테 혼이 나서 도망 다닐 땐 깨갱거리는 강아지처럼 쭈그린 채 울부짖는다 한들. 또 그런 모습이 여자에겐 모성애를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 첫눈에 반해 만났다는, 꽤나 진지한 연애사를 늘어놓길래 그 친구는 네가 왜 좋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잘해주긴 해요. 힘없이 웃는 그였다.


잦은 실수에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충분히 많았다. 집이 가까운 사람은 마감까지 했고, 가와구치는 가게가 있는 마치다에 나는 한 정거장 떨어진 사가미오노에 살고 있었다. 라스트 오더가 끝나면 점장은 수고해, 먼저 간다, 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손님이 없으면야 우리도 금방 마무리하고 갈 수 있는데 셔터문 내리기 직전까지 꾸역꾸역 앉아있는 손님은 이틀에 한 번꼴로 있었다. 테이블별로 빌지를 모아 두었다가 라스트 오더가 끝나면 계산을 미리 받았다. 명목상 받아도 되는 타이밍인 정당한 행위였지만, 몇몇 손님들은 불쾌하다는 듯 나가라는 거야? 소리치기도 했고, 눈치 빠른 손님들은 옷가지를 챙기고 계산하러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막차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졌다. 가와구치는 런치를 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가게 열쇠를 맡길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서둘러 정리해도 빠듯한 시간이 되면 가와구치는 눈치껏 빌지를 챙겨 테이블로 향했다. 나름 미소를 띤 얼굴이었을 텐데 세상 사람들 눈엔 잔뜩 찡그린 듯한 기괴한 표정으로 계산을 부탁하곤 했다. 특유의 표정에 효과가 있었던 걸까. 가와구치가 빌지를 들고 가면 찰떡같이 신용카드를 받아냈다. 계산을 마치고 다시 서명을 받으러 간 다음 챙겨놓은 영수증과 껌, 사탕을 인원수에 맞게 건넨다. 작지만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고 계산대로 돌아오는 가와구치는 늘 의기양양했다. 잘했죠? 막차시간 맞출 수 있겠죠?


먹지마, 기다려, 안돼... 먹어! 하자마자 간식을 날름 받아먹는 강아지가 칭찬받길 바라는 표정으로 주인을 보는 얼굴. 딱 그만큼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일했던 2년 내내 그는 한결같았다.


맥주 서버를 갈아야 할 때면 귀신같이 나타났다. 새 서버 통을 들고서. 그마저도 그 가녀린 허리로 들고 있기엔 상당히 버거워 보였는데 그는 용케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3층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서버를 옮겼다. 무거운 걸 절대 들지 못하게 했다, 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귀찮은 일, 어려운 일, 은 본인이 하려 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지만, 결코 일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는 것도 그 부분이 컸다. 굳이 안 도와줘도 되는 일을, 내가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그는 솔선수범해서 나섰다. 하도 성심성의껏 잘해주길래 한 번은 일 끝나고 조촐하게 가졌던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같은 아르바이트생끼리. 힘든 일도 다 도맡아 하잖아.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또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대답했다. 선배잖아요. 힘든 시절을 같이 겪었으니까 당연히 잘 모셔야죠.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점장, 쿠마 씨의 눈치를 유독 살폈다.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 앞에선 거드름을 피울 줄도 알았다. 신입이 일을 잘 못하거나 실수를 한다 싶어 멀리서 쳐다보고 있으면 제가 가서 손 좀 볼까요, 아주 혼구녕을 내주고 올까요, 라며 이죽거렸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적은 없었다. 그는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심성이 못됐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를 아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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