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내시경엔 보호자가 필요하단다. 아버지는 한 달 전부터 내게 부탁해왔고 나는 그걸 또 늦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둘러댈 핑곗거리를 찾아낸다. 아버지가 천천히 오라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대충 열 두시 언저리라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백팩을 끌어안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 들어 날 올려다보더니 씩 웃는다. 너무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와버렸다.
"아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가 안 온다고 어디도 못 가게 하더라고."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기다리느라 짜증도 났을 법 한데 아버지는 저 한마디가 끝이다.
당신이 30년간 몸담았던 직장 앞. 병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맛있는 삼계탕집이 있단다. 차로 6분 거리인데, 어지럽다며 걷고 싶어 하는 아버지 덕분에 팔짱을 끼고 걸었다. 이렇게 걷는 거 참 오랜만이다.
"아빠 퇴직하기 전에도 좀 이렇게 와서 밥도 먹고 팔짱도 끼고 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수십 년간 담아온 서운한 속내를 아버지는 담백하게 흘려보낸다. 한 번도 그리 말해온 적이 없었다. 너무나 홀연히 가벼운 표정으로 내뱉는 아버지 옆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진다. 왜 진작에 못했을까.
삼계탕집은 40년, 50년 즈음된 노포다. 편집하다 영 손에 안 잡히면 동료들과 반주하러 종종 찾았던 곳이라 했다. 자리에 앉으니 구수한 향이 퍼지는 인삼주 한 잔이 나온다. 이모들이 직접 담근 인삼주가 일품이라며 한 잔 건네준다. "남들은 삼계탕 먹으러 이 집에 오는데 난 이거 먹으러 왔었어." 씩 웃는다.
속이 메슥거린다며 수저도 못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본다. 보다 못한 이모가 인심 좋은 얼굴로 희멀건 죽을 한 그릇 끓여주신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밍밍한 죽을 아버진 참 맛있게도 드신다. 보리차 대신 온수를 뜨러 가니 이모는 양껏 끓여놨다며 보리차를 권하고, 기껏 끓인 보리차 다른 손님 드리라며 아버지는 손사래 친다. 한동안 이모와 아버지의 대화가 오간다. 깍두기 한 입 물고 아버지 뒷모습을 보는데 아, 저 뒷모습이 내 아빠라 참 좋다, 싶다.
결혼하고 한창 바빠지더라도 부모님이 수면내시경 하는 날은 꼭 시간을 비워보리라 다짐한다. 마취가 덜 깨 어질어질하고, 메슥거려 입맛도 없을지언정 팔짱 끼고 길거리라도 걷다 인삼주도 한 잔 하고. 그런 작은 연례행사쯤은 연에 한 번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