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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분은 글쓰기를 멈추었을까?
왜 그 많은 글들을 다 내렸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분의 브런치스토리엔 작가명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까?
브런치(브런치스토리는 여전히 입에도 글에도 붙지 않는다)를 시작하고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우연히 피드를 타고 만나게 된 작가분이 있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분이셨는데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고충과 기쁨을 일상의 언어로 그려내고, 아이들이 잠든 밤이 되어서야 뼛속 깊이 스며든 외로움과 그리움, 슬픔을 돌보는 문장들이 참 인상에 남았었다. 희미한 기억으론 그때 구독자는 20여 명 정도, 좋은 글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몇 주가 지나지 않아 100명, 지금은 500여 명이 넘었다. (아마도 좀 더 적극적인 제목을 달았다면 더 많은 구독자가 생겼을 텐데... 그분의 성향상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고 나름 짐작해 본다.) 나뿐만 아니라 그분을 구독하는 모든 분들이 그분의 글에 울고 안도했다. 댓글을 보면 안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그분의 글은 에세이를 가장한 소설이나 산문시처럼 점점 더 단단하고 아름다워졌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노란 스펀지처럼 일상을 나열한 문장은 슬픔과 다급함과 불안함을 그렇게 가두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글을 소설을 읽듯 읽었다. 매주 한두 편씩 올라온 글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남편의 미심쩍은 행적을 비롯하여 글 속 화자가 자주 꾸는 꿈, 살다가 한 번쯤 운명처럼 찾아오는 첫사랑과의 재회, 화자의 어린 시절과 대비되는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 등은 종합선물세트처럼 서스펜스, 호러,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넘나들었다. 급기야 나는 그분의 글이 픽션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30대 초반의 여자분이 아닌 50대 중후반의 남자가 아닐까? 아니면 이름을 숨기고 활동하는 연륜 있는 작가? 아니 아니 오히려 20대 초반의 작가지망생일지도… 하면서 말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펼치며 나는 그분의 글을 두근두근 기다렸다. 보통 소설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한때 열린 결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도 하던데 나는 작가가 결말을 지어주는 걸 좋아한다. 이왕이면 해피엔딩으로. 그분의 글의 끝이 그러하기를 바라며 기다렸다. 그런데 글태기로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몇 주 동안 그분의 브런치는 대문만 그럴듯한 빈 집이 되어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전문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마음으로부터 글이 밀려 올라올 때 글이 쓰인다. 그렇게 쓰인 글을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보이면 한결 후련해진다. 폭로의 희열과 함께 '언젠가 나아질 거야'라는 한 스푼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는 그분이나 나와 같은 이들에게 브런치스토리는 맘껏 내지를 수 있는 대나무숲이다. 그러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에게도 글이 닿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는 사토라레를 자처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언제든 글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약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대나무숲에서 건강하게 살아나기 위해서는 조금은 뻔뻔해지거나 글을 거두어들이는 방법밖에 답은 없을 테다.
어떤 무게가 그분을 짓눌렀는지 알 길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계속 글을 써 나아가기를 바란다. 한 스푼의 희망이 그분의 곁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의 글이 너무나 아름다웠으므로...
아쉽고 안타까운 감정에 너무 몰입되었던 탓인지 다른 가능성을 놓치고 말았다. 내가 들르지 못한 새 해피엔딩으로 글이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아도 될만큼 더는 아플 일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잠시 휴장 후 새로운 글을 가지고 돌아오시지 않을까…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번엔 코믹 장르도 더해서!